정부가 금융사에 대한 외환 규제를 완화하며 ‘달러 풀기’를 유도하고 있지만 리스크 관리에 비상등을 켠 국내 은행들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수차례 금융위기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은행들은 이미 규제보다 대폭 강화한 자체 기준에 따라 달러 자금을 쌓고 있어 정부의 단편적인 규제 완화가 시장의 달러난 해소에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25일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 등 4대 외국환은행의 현재 외화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은 평균 120.5%에 이른다. 이미 현행 규제 비율인 80%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다만 이 역시 은행별로 130~150% 수준이었던 지난 2월 말에 비하면 적지 않게 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화 LCR은 향후 30일간 빠져나갈 수 있는 순외화유출액 대비 고유동성 외화자산의 비율로 금융사의 외환건전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정부는 이날 은행에 대한 외화 LCR 규제를 한시 완화하고 외화건전성 부담금도 당분간 면제하겠다고 밝혔다. 18일 은행에 대한 선물환 포지션 규제 한도를 상향한 데 이어 일주일 만에 추가로 나온 조치다. 외환스와프 시장을 중심으로 은행들이 달러 유동성을 보수적으로 관리하고 있어 달러가 풀리지 않는다는 원성이 잇따른 데 대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다만 은행들은 “은행의 달러 공급 여력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면서도 “극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반응이다.
과거 금융위기 때마다 금융기관의 외화 유동성 부족이 전체 시스템 부실로 이어진 경험이 있는 은행들로서는 단기 유동성 비율이 다소 여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달러를 풀기는 어렵다는 분위기가 짙다. 실제 주요 은행들은 지난달부터 내부적으로 외화 유동성 관리를 위해 비상체제에 들어간 상태다. 우리은행은 외화 유동성 태스크포스팀(TFT) 3단계를 가동하고 평시 110%인 외화 LCR 목표를 130%로 상향해 관리하고 있다. KB국민은행도 비상대책위원회를 통해 외화 LCR은 물론 향후 3개월간 건전성을 보여주는 스트레스테스트 관리 기준을 금융감독원 기준보다 높였다.
A은행의 한 임원은 “은행들로서는 3개월을 넘어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를 대비할 수밖에 없다”며 “기업의 불요불급한 수요에는 적극 대응하겠지만 규제 비율이 완화된다고 무조건 달러를 풀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B은행의 외환 담당자는 “명목상 규제 완화보다는 다음주 한미 통화스와프 자금 조달이 시장의 달러 부족 해소에 더 실질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