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의자의 배신]지구 최강 사냥꾼은 어쩌다 약골이 됐나

■바이바 크레건리드 지음·아르테 펴냄
딱딱한 발바닥 긴 종아리로 달리던 인류
이동 멈추면서 근육·뼈 약해지기 시작해
산업혁명으로 의자 대중화···건강 나빠져
요통, 당뇨, 근시, 치통 온갖 질병 늘어나


아침에 일어나 잠들 때까지 우리가 하루 동안 사용하는 의자는 몇 개쯤 될까.

식탁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소파에 앉아 신문을 읽는다. 집을 나서면 자가용을 운전하든 버스를 타든 대부분 앉아서 이동한다. 일터나 학교에 들어선 후에도 마찬가지다. 주인을 기다리는 애완동물 마냥 우리를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건 빈 의자다. 중장비를 조종하는 일도, 컴퓨터로 문서를 만드는 일도 일단 앉은 후에 시작한다. 그뿐인가. 동료와 점심을 먹을 때도, 연인과 영화를 볼 때도 의자가 우리와 함께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의자 없는 삶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다. 언제부턴가 의자는 우리에게 공기나 물, 불 같은 존재가 돼 버린 것이다.

독일에서 열린 디자인 축제에 전시된 의자./EPA연합뉴스

의자가 존재하지 않았던 아주 오래 전 인간의 삶은 어떠했을까. 의자는 어떤 연유에서 만들어졌으며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영국의 작가 겸 인문학자 바이바 크레건리드가 이를 알아내기 위해 기원전 5억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인류의 진화를 탐구했다. 신간 ‘의자의 배신’은 인류의 탄생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류 진화의 몇몇 중대 전환점을 속속들이 파헤친 학문적 연구의 결과물이다.


책에 따르면 인류는 두 발로 일어서 걷게 되면서부터 두 손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이는 다른 생명체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진화의 전환점이었다. 발바닥 피부는 거친 표면에 적응해 딱딱해졌다. 숲을 지나 초원을 만난 인류는 달리기를 시작했다. 이에 종아리 근육은 길어졌고, 엉덩이와 허벅지 근육은 탄탄해졌다. 이는 달리기 속도를 더 높여줬다. 정교한 손으로 도구를 찾아 먹잇감을 향해 빠르게 달려드는 지구 최강의 무시무시한 사냥꾼이 된 것이다.

의자가 없던 시절 인류는 쪼그려 앉아 쉬었다. 이 자세에서 무게중심은 발 앞쪽과 발뒤꿈치에 걸쳐 고르게 균형을 이뤘다./그림제공=아르떼

하지만 영민해진 인류는 떠도는 생활 대신 무리 지어 한 곳에 머무는 방식을 터득했다. 3만~2만5000년 전쯤부터다. 더이상 뛰어다니지 않고 고기 대신 탄수화물을 즐기게 되면서 키는 줄어들었고 뼈도 얇아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전히 인류는 하루종일 노동을 했다.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활동 범위가 좁았던 여성만 해도 그렇다. 기원전 5300~기원 후 100년 사이 여성 표본들의 평균 뼈 강도는 운동을 하지 않는 현대 여성들보다 30% 정도 높았다. 옷을 만들기 위해 동물 가죽을 벗겨 내는 일과 컴퓨터 키보드 자판을 기껏 4㎜ 정도 깊이로 누르는 일의 노동 강도를 비교해서 상상해보면 된다.

200년 전 산업혁명은 의자의 대중화를 가져왔다./그림제공=아르떼

인류의 몸이 변하게 된 또 한 번의 결정적 시기는 1700~1910년 ‘석탄 빛 자본주의’ 산업혁명이다. 생활 방식과 환경이 획기적으로 변했다. 육체노동을 기계가 대체했다. 교통수단이 다양하게 발전하면서 도보 이동 기회는 더 줄어들었다.

그러면서 의자가 대중화됐다. 의자는 구석기 시대쯤 등장했을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셰익스피어의 대표적인 문학 작품 ‘햄릿’에서도 의자의 흔적은 찾기 어렵다. 의자가 빠르게 보급된 건 불과 200년 전이다. 산업혁명이 낳은 대량 생산 시스템에 힘입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저자는 오늘날 전 세계에 있는 의자가 최소 1인당 7개 이상일 것이라고 추산한다. 오래 전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던 의자에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앉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모두가 달콤한 휴식을 누리게 됐지만 신체적으로는 비극의 시작이었다. 더이상 걷고 달리지 않게 되면서 근육은 약해지고 골밀도는 더 낮아졌다. 대량 생산 시스템이 만들어낸 먹거리도 유해했다. 요통, 평발, 근시, 당뇨, 천식 등 온갖 질병이 늘어났다. 이로 인해 ‘운동’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몸을 자연스레 쓸 일이 없어 건강이 나빠지다 보니 건강 유지를 위해 인위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논리가 생겨난 것이다.

저자는 건강하고 싶다면 의자를 신체의 일부처럼 여기는 삶부터 버리라고 말한다. 스쿼트 자세를 배우라고 제안한다. 스쿼트 자세는 인류가 수 만 년 동안 휴식 자세로 취했던 쪼그려 앉기와 비슷하다. 아이들도 바깥으로 내보내라고 조언한다. 하루에 세 시간은 햇빛을 쬐어야 근시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당장 일어나 빨리 걷기를 하라고 강조한다. “걷기는 언제나 그렇듯이 기적의 치료제이다. 수백만 년 전 초원에서 살던 종과 우리를 연결하는 일종의 연결고리다.” 2만8,000원.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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