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B산업은행·수출입은행이 두산중공업에 1조원 규모의 긴급경영자금을 대출해주기로 확정했다. 보통 때라면 워크아웃 등에 돌입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불안한 경제에 미칠 파장, 국가기간산업인 발전업에 끼치는 영향을 고려한 조치다. 다만 1조원도 올해 두산중공업이 갚아야 할 돈에 비해 많이 부족해 두산그룹의 자구노력을 봐가며 추가 지원도 검토하기로 했다. 저비용항공사(LCC)에 대해서도 산은이 지원하기로 한 3,000억원 이상의 추가 지원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지만 LCC 재편 등 정부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봤다.
산은은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두산중공업 관련 동향을 보고하고 수은과 함께 한도대출을 제공하기로 했다. 일종의 ‘마이너스통장’으로 두산중공업이 요청하면 은행이 심사한다. 산은과 수은이 절반씩 분담하기로 원칙을 정했고 다른 시중은행이 참여할 경우 그만큼 국책은행의 지원분은 줄이기로 했다. 두산은 보유한 두산중공업·두산솔루스·두산퓨얼셀 주식과 두산타워 신탁인수권 등을 담보로 제공한다.
산은은 “계열주, 대주주인 두산, 임직원, 채권은행 등의 고통 분담과 책임 이행, 자구 노력을 전제로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최대현 산은 기업금융부문 부행장은 “두산그룹 3세·4세 등 관계자 32명이 보유하고 있는 계열주를 담보로 잡았다”고 말했다.
최 부행장은 “통상적이라면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등 법적 절차를 통해 정상화하는 것이 타당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초유의 자금시장 경색, 대규모 실업 등 사회경제적 악영향, 지역 경제 타격, 금융시장 혼란 등에 따른 기업 연쇄부실 우려 등을 고려해 자금지원 결정이 불가피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두산중공업은 국내 원자력발전소·화력발전소 152개 중 102개를 시공했고 원전 수출 등에서도 중요도가 높은 기업이기 때문에 지원을 결정했다는 이야기다.
다만 산은도 이번 지원으로 두산중공업의 유동성 위기가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봤다. 최 부행장은 “1조원은 올해 두산중공업이 상환해야 할 자금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회사가 연초부터 진행한 자구책, 앞으로 발표할 내용 등의 이행 과정에서 지연이나 변동이 생기거나 (자회사 매각 등) 딜(거래)의 성사 가능성이 높다면 추가 지원을 고민해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대기업 지원에 인색했던 현 정부의 기조를 감안하면 이례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두산중공업의 금융사 차입금은 지난해 말 7조원(연결기준)에 달한다. 당장 오는 5월 안에 회사채 최대 1조 2,000억원을 상환해야 한다. 외화사채 5억달러(6,140억원)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5,000억원에 다른 회사채까지 합한 규모다. 이 가운데 외화사채는 지급보증한 수은에 대출로 전환할 것을 요청했고 수은도 받아들일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 단기차입 금액이 4조원에 이르는데, 두산중공업은 오래 거래해온 금융사들이어서 차환될 것으로 기대하지만 확정될지는 미지수다.
산은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두산중공업이 어려워졌다는 비난을 의식한 듯 “2014~2016년 연평균 매출이 5조원에서 2017~2019년 4조원대로 1조원 정도 감소했는데 이 중 해외발전 매출 감소가 82%”라며 “각국의 원전 발주가 지연되는 게 세계적인 흐름이어서 영업상 어려움이 온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LCC 관련해 산은은 기존에 발표한 3,000억원 규모의 지원이 이달 안에 완료될 것으로 봤다. 다만 최 부행장은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면서도 “추가 지원이 이뤄진다면 부처에서 (항공사) 재편과정 등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전제를 달았다. 올해 LCC 업체는 9개로 늘어나는데 미국(9개), 일본(8개), 중국(6개)에 비해 많거나 같은 상황이다.
/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