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울의 언어정담] 내게 용기를 주는 사람들

작가
누군가에게 살아갈 힘을 주는 것은
단순하고 마음 편하게 해주는 위로
'할 수 있는 것' 찾게하고 용기 주면
고통스런 현실 넘어 새로 태어나게해

정여울 작가

내가 가진 모든 언어가 사라져버린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당황하고 불안하고 우울할 때, 내가 배우고 읽고 써온 모든 언어가 낯설어질 때가 있다. 그 많은 책을 읽고 그 많은 글을 썼는데도, 아직도 나는 머릿속이 하얘지고 아무것도 쓸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힌다. 다행히 나에게는 그럴 때 뜬금없이 전화해도 마치 엄청나게 중요한 전화인 것처럼 받아주는 선배가 있다. 많은 책을 내지 않았지만, 내가 정말 존경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어제는 그야말로 뜬금없이 전화해서 선배의 안부를 묻는 척하면서 나의 불평을 늘어놓았다. “모든 강연이 취소되면 시간이 많아져서 글이 잘 써질 줄 알았는데요, 아무리 붙들고 있어도 글이 잘 써지지 않아요.” 선배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이렇게 받아쳤다. “너는 잘 안 써지는 정도지. 나는 이제 전혀, 전혀 안 써져.” 나는 너무 어이가 없어 너털웃음이 나왔다. 선배는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 자기를 형편없이 망가뜨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아무리 씩씩하고 강인한 작가라도, 글이 전혀 안 써지는 상황이 즐거울 수 있겠는가. 그런데 선배는 그 어려운 상황을 시트콤으로 만들어버리고 ‘넌 좀 쉬어도 된다’고 ‘넌 좀 놀아도 된다’고 위로해준다. 나는 깔깔 웃으며 비로소 ‘나’로 돌아왔다. 작가들의 무서운 적, 라이터스 블록(writer’s block·글이 전혀 써지지 않는 상황)이라는 것은 이렇게 치유되기도 한다.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너무 괴로워하지 않으면서, 내게 용기를 줬던 문장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 책이 떠올랐다. 작가 마야 안젤루는 ‘엄마, 나 그리고 엄마’라는 책에서 자신이 10대 때 단 한 번 실수로 임신하게 된 일, 남자친구에게 납치된 뒤 심한 구타를 당해 죽음 직전까지 갔음을 고백한다. 간신히 살아난 뒤에도 좀처럼 마음을 잡지 못한 그녀는 심한 우울과 불안을 느끼고 다짜고짜 근처 정신병원으로 가서 자신을 진찰해달라고 했다. 예약을 안 했기에 진찰이 불가능하다며 곤란해하는 간호사에게 간청한다. 지금 나를 진찰해주지 않으면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고. 간신히 의사를 배정받아 그를 맞닥뜨리는 순간. 마야는 ‘저 사람에게는 내 이야기를 할 수 없겠구나’하는 좌절감을 느꼈다. 백인 남성이고 의사이며 부자임에 분명한 그가 흑인 여성이고 싱글맘이며 한 번도 제대로 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는 자신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았기에.

마야는 학창시절 은사께 찾아가 고백했다. 도저히 못 견디겠다고, 이렇게는 살 수 없다고. 그러자 그녀에게 성악을 가르쳤던 은사는 그에게 종이와 펜을 쥐여주며 ‘네가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네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써보라고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싫다고 도리질을 하던 그는 드디어 테이블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한다. “나는 들을 수 있다. 나는 말할 수 있다. 나에게는 아들이 있다. 나에게는 오빠가 있다. 나는 춤을 출 수 있다. 나는 노래를 부를 수 있다. 나는 요리를 할 수 있다. 나는 글을 읽을 수 있다. 나는 글을 쓸 수 있다.” 이 짧은 글이 마야의 진정한 데뷔작이었다. 바로 이것이다. 누군가에게 살아갈 힘을 주는 것들은 이렇게 단순하면서도 직접적이다. 엄마가 있다는 것, 오빠가 있다는 것, 춤을 출 수 있는 것처럼,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다른 모든 길들이 막혀 있지만 오직 글을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마야는 힘을 낸다. 그는 작가로 새로 태어난다. 인종차별이 심했던 당시 사회에서 가난한 흑인 여성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고통스런 현실을 뛰어넘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글을 쓰는 사람으로 새로 태어난다. 나도 그랬다.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으로 새로 태어난다는 것은 글을 쓰는 동안에는 그 어떤 외부의 자극에도 흔들리지 않는 용기를 얻는다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의 꿈을 표현하고, 타인의 꿈과 나의 꿈이 이어지기를 소망하는 내 간절함을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운 비상구를 얻는 길이다. 글을 쓰는 동안만은 온갖 고통 속에서도 결코 부서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완전히 자유롭다. 눈부시게 충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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