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기념관, ‘4월의 호국인물’에 나창준 공군소령 선정

6·25전쟁 출격때 항공기 비행 불능되자 적 진지로 자폭


전쟁기념관은 6·25전쟁 때 평양 군수공장 등을 폭격하고 적 진지로 자폭 비행해 산화한 나창준(사진) 공군 소령을 ‘4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

1928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출생한 나 소령은 1944년 3월 일본 다치아라이 육군비행학교를 졸업했다. 1948년 9월 육군 항공대에 입대하고 이듬해 10월 공군 창설과 함께 L-4연락기 조종사로 복무했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자 L-4를 몰고 전·후방 정찰 및 공비 토벌 임무를 수행했다. 그해 6월 28일에는 동료 조종사 3명과 함께 여의도 비행장에서 미처 철수하지 못한 미국 군사고문단 소속 L-5 연락기 2대를 적 대공포 사격을 뚫고 수원기지로 옮겼다.


1950년 10월 소위로 임관하고 이듬해 3월 중위로 진급한 그는 같은 해 8월 F-51D 무스탕 전투기로 기종을 전환하는 훈련을 받은 뒤 제1전투비행단 강릉 전진기지에 배속됐다.

공군 최초의 단독 출격작전에 참여하고, 원산과 평양까지 출격해 수많은 적 전차와 진지, 보급품 저장소, 군수공장 등을 파괴했다.

1952년 4월 5일 평양 남쪽 진남포 지역의 적 보급로 차단과 군수공장 폭격 명령을 받고 4대의 F-51D 무스탕 전투기 편대를 이끌고 강릉기지에서 출격했다.

철교와 군사시설을 폭파한 후 진남포 군수품 생산공장을 공격했으나 적의 대공포에 맞았다. 나 소령은 항공기가 비행 불능 상태에 처하자 적 진지로 자폭 비행해 25세의 나이로 산화했다.

전쟁기념관은 “나 소령은 6·25전쟁 기간 F-51D 무스탕 전투기 조종사로 총 57회의 출격을 기록했다”며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려 1계급 특진과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했다”고 설명했다.
/김정욱기자 myk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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