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와 광복회·독립기념관이 ‘4월의 독립운동가’로 오광선(사진 왼쪽)·정현숙(오른쪽) 선생 부부를 선정했다.
오광선은 지난 1896년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나 1913년 삼악학교를 졸업한 후 이웃 마을의 정현숙과 결혼했다. 독립운동에 뜻을 품은 그는 1915년 중국으로 건너가 1918년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동흥(東興)학교 군사교관과 체육교사로 재직하며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서 독립군 양성에 헌신했다. 1920년 대한독립군단 중대장, 1930년 한국독립당 의용군 중대장으로 활동했고 1934년에는 중국 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 교관으로서 군관 양성 활동에 매진했다. 이후 오광선은 김구 선생의 지시로 1936년 중국 베이징에 파견돼 첩보 활동을 벌이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됐고 신의주 형무소에서 2년간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에는 ‘대한국군준비위원회’ ‘광복청년회’ ‘대동청년단’에 참여했고 1948년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입교해 이듬해 육군대령으로 임관, 전주지구위수사령관을 지낸 후 준장으로 예편했다.
1900년 출생한 정현숙은 1919년 남편을 따라 만주로 건너가 남의 집 일을 해주고 받은 품삯으로 남편의 뒷바라지에 헌신해 ‘만주의 어머니’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1941년 한국혁명여성동맹원으로 활동했으며 1944년에는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임시정부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오광선·정현숙 부부의 딸인 오희영과 오희옥은 1939년 2월 조직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참여해 선전 활동에 참여했다. 또 광복군에 입대해 활동하고 오희영의 남편인 신송식도 독립운동을 펼쳤다.
정부에서는 이들의 공훈을 기려 오광선에게는 1962년 독립장, 정현숙에게는 1995년 애족장을 추서했다.
/김정욱기자 myk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