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추위가 풀리고 따뜻한 봄이 찾아왔는데, 바이크를 타고 멀리 나가기도 조심스러운 요즘입니다. 얼마 전엔 강화도로 시즌오픈 투어를 다녀오려던 걸 포기했습니다. 강화도는 고령 인구 비중이 높은 데다 의료 시설도 부족해 외부인이 바이러스를 옮겨오면 큰일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서울 동쪽으로 방향을 틀고 점심은 미리 준비해간 김밥, 편의점 컵라면으로 해결했더랬죠.
이렇게 이동 자체가 조심스러운 때, 지난 1월의 인도네시아 발리 여행기를 풀어 봅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온 세상이 평온했고 저는 추운 한국의 겨울을 벗어나 따뜻한 나라로 간다는 기대감에 가득 차 있었죠. 그리고 연간 모터사이클 판매량이 650만대쯤 되는 인도네시아니까 현지에서 당연히 바이크를 빌려 타야겠다는 계획도 세웠습니다.
마냥 평온했던 발리의 풍경
그런데 혹시나 싶어 찾아보니, 인도네시아는 도로교통에 관한 국제협약 가입국(국제면허증을 인정하기로 약속한 국가들)이 아니더군요. 2017년 대만 여행 때도 국제면허증이 통용되지 않아 아쉬웠던 기억인데, 인도네시아도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여행 후기를 찾아보면 인도네시아의 한국인 여행자들 일부가 몰라서 그런건지 스쿠터를 렌트해 탔다는 내용이 종종 눈에 띄더군요. 그러면 안됩니다. 심지어 발리의 여행객 밀집지역에서 꽤 자주 단속도 이뤄진다고 하니까요. 저도 발리 우붓 어딘가에서 바이크를 탄 무헬멧 백인 커플을 불러 세우는 현지 경찰을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벌금이 한국 돈으로 수십만원에 이른다 하니 범법행위는 네버 에버 생각도 마시길 당부해 봅니다.
발리는 듣던 대로 날씨도, 사람도, 놀기도 좋은 곳이었습니다. 바이크가 일상적 교통수단인 나라답게 갓길이나 차간주행이 일상적이었고, 사륜차들도 매우 적극적으로 바이크가 다닐 공간을 마련해 주더군요. 바이크는 ‘바리오’ 같은 혼다 스쿠터 기종이 많았고, 좀더 비싼 엔맥스 같은 스쿠터도 종종 눈에 띄었습니다. 스쿠터 외의 기종 중에는 닌자300, CBR125나 300이 가장 많이 보였구요. 일본 모터사이클 브랜드 지점이 많았고 로얄엔필드 매장도 한번 지나쳤습니다.
발리 어디에나 빽빽하게 주차된 바이크들. 이 곳의 바이크는 앞뒤 모두 번호판이 달려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배달 바이크가 참 많은데, 이 곳도 비슷합니다. 특히 ‘고젝(Gojek)’, ‘그랩(Grap)’ 같은 배달&택시 서비스용 바이크가 많이 눈에 띕니다. 특히 고젝은 이곳 인도네시아에서 스타트업으로 출발한 기업이더군요. 저는 사륜택시 호출 서비스만 이용해 봤지만 고젝이나 그랩으로 배달되는 음식이 제대로 현지 음식인 데다 가격도 어마어마하게 저렴하다 합니다.
차 타고 가다 찍은 고젝 라이더. 사진 흔들림 죄송합니다..;
발리에 도착한 지 2, 3일 지나고 나서야 이 곳에 버스 같은 대중교통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왕복 6차선 이상의 큰 도로 몇 개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도로는 좁고 차선도, 신호등도, 횡단보도도 거의 없습니다. 물론 현지인들은 너무나도 스무스하게 서로 비켜주고 피해가며 주행하지만요. 바이크 면허는 18세부터 취득 가능하다던데 10살 남짓의 어린아이들도 가끔 스쿠터를 타고 지나가더군요.
발리에도 편의점이 많은데 워낙 다수가 바이크를 일상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다보니 편의점 앞마다 바이크 몇 대씩은 꼭 세워져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편의점이 전부 북악스카이웨이 편의점, 제임스교 편의점 같은 느낌입니다.
바이크로 북적이는 편의점 앞마당
바이크로 모여 수다를 떠는 발리 사람들. 아기와 함께 바이크를 타는 엄마, 아빠들도 이 곳에는 흔합니다.
특이한 점은 거의 모든 바이크에 밀짚 리본 같은 게 묶여있었단 점입니다. 자전거에도 매어져 있었는데,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대충 ‘안전을 기원하는 표식’이라고 합니다. 좀 더 알고 싶어서 인터넷으로 검색했더니 이 곳에서는 210일에 한 번씩 ‘Tumpek Landep’이라는 의식을 치른다 하더군요. 이곳 힌두교도들이 ‘금속의 신’인 시바 파스파티(인간에게 철과 금속을 다루는 지식을 전수해 주었다고 전해짐)에게 감사를 표하는 의식입니다. 과거에는 무기의 중요성 때문에 생겨났을 듯한데 지금은 자동차, 바이크, 자전거, 컴퓨터, 냉장고 등 금속 재질의 물건 모두가 해당된다네요.
그리고 저 잎사귀는 밀짚이 아니라 이 동네에 흔한 코코넛 잎이라고 합니다. 코코넛 잎뿐만 아니라 꽃 등 다양한 장식으로 우리 생활에 큰 도움을 주는 금속류 물건을 꾸미고 과일 제물을 바치기도 하고 성수(코코넛 물)을 뿌리기도 한답니다. 그러면서 감사의 기도를 올리면 정화된다는, 안전도 지켜진다는 그런 믿음인 것 같습니다.
바이크에 묶어둔 코코넛 잎.
자전거도 안전 기원!
발리는 이 곳에서 매우 가까운 호주인들이 개발한 관광지라고 합니다. 실제로 발리 관광객의 70% 이상이 호주인이기도 하구요. 그래선지 호주에서 탄생한 서핑·모터사이클 브랜드 ‘데우스 엑스 마키나’ 매장이나 카페가 몇 군데 있습니다. 전 지금까지 못 가봤는데 드디어 들러봤습니다. 기념으로 티셔츠도 하나 샀더랬죠.
발리 우붓 어딘가의 데우스 매장.
발리는 울룬 다누 베라탄 사원, 타나롯 사원, 자티루위 라이스 테라스(rice terrace) 같은 문화유적지나 자연명소가 곳곳에 있지만 다양한 즐길 거리도 많습니다. 래프팅(아융강보다 뜨라가와자 강이 수질도 좋고 더 재밌다더군요)이라든가 제가 싫어하는(TMI) 해양 스포츠류라든가…. 그런데 길 가다 우연히 발견한 이 광고는 참 끌리더군요. 도로를 조금이라도 달려야된다면 한국인 참여 자체가 불가능하겠지만, 또 검색해보니 바닷가, 산길, 논두렁(...?) 등 오프로드 코스 입구에서부터 바로 시작하는 투어입니다. 그래서 홈페이지에도 ‘면허 필요 없음’이라고 표시돼 있습니다. 장비 일체 제공에 전문 가이드가 동행하니까 무경험자도 안전하게 즐길 수 있다는 설명과 함께요. 저는 이미 일정이 다 끝나가서 못 해봤지만, 발리에 놀러가는 두유바이크 독자분이라면 한번 고민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놀러다닐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겠지만 열심히 참아봐야겠습니다. 고생하시는 의료진, 공무원, 그 외 모든 분들께 항상 감사할 따름입니다. 바이크는 서로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취미라 그나마 낫지만 그래도 식당 이용이라든가 관광지 방문, 밀집지역 방문 등은 자제하고 조심해야겠습니다. 얼른 코로나가 물러나길 바라며, 다음 번 두유바이크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