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영세자영업자 10명 중 9명은 착한 임대인 운동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지적한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전국 소상공인 1,080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90.3%는 자신이 입주한 건물주는 임대료 인하 응하지 않는다(‘착하지 않다’)고 답했다.
지난해 4분기 중대형 상가 전국 공실률이 11.7%로 역대 최고를 기록한 가운데 7일 서울 이태원역 주변의 상가들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공실로 남아 있다.
하지만 임대료 인하를 통한 경비절감이 반드시 운이 좋아서 착한 임대인을 만나야지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소상공인들은 임대료 인하를 요청할 수 있는 법적권리가 있다. 상가임대차보호법 11조다.
먼저 조항을 살펴보자.
“제11조(차임 등의 증감청구권) ① 차임 또는 보증금이 임차건물에 관한 조세, 공과금, 그 밖의 부담의 증감이나 경제 사정의 변동으로 인하여 상당하지 아니하게 된 경우에는 당사자는 장래의 차임 또는 보증금에 대하여 증감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증액의 경우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따른 비율을 초과하지 못한다.”
법률용어라 다소 아리송하지만 풀어쓰면 경제여건의 심각한 변동이 생겼을 경우 임차인은 임대인에게 임대료 인하를 요청할 수 있다. 코로나가 미증유의 경제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에 이견이 없는 만큼 매출급감에 사투하고 있는 자영업자에게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 법적 권한인 셈이다.
경기도가 지자체로서는 처음으로 상가임차인 임대료 분재조정지원에 나선 것도 상가임대차보호법 11조가 배경이다.
경기도는 지난 22일 도산위기에 직면한 소상공인들을 돕기 위해 상가임차료 조정지원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임대차 관련 전문상담을 늘리고 분쟁조정위원회 기능을 활성화하는 것이 골자다. 경기도 설명에 따르면 조정결과는 상가임대차법상 법원판결과 동일한 집행력을 지니며 별도 판결문 없이도 강제집행이 가능한 효력이 부여된다. 경기도는 소송보다는 분쟁조정이 임대인과 임차인의 불필요한 갈등을 방지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이 같은 지원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골목상권이 추락하는 상황에서 마땅히 쓰여 할 법적권리가 실제로 효과를 발휘할 지는 의문이 따른다.
우선 선례가 거의 없다.
지난 2017년 병원 내 편의시설 임차인이 청탁금지법 등 시행에 따라 유동인구가 감소해 매출이 크게 줄었다며 임대료 인하 청구소송을 제기했지만 기각됐다.
법원의 이 같은 판단은 청탁금지법이 11조가 규정한 ‘경제사정의 상당한 변화’로 인정 받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분쟁조정이라는 절차가 지닌 한계점도 있다.
소송과정에 돌입해서 재판부가 양측의 사정을 고려해 법적효력을 갖춘 판결이 내려지는 중재절차와 달리 조정은 양측 모두가 동의해야만 최종안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경기도 설명대로 조정결과가 나오면 강제력이 발생하지만 조정결과가 나오는 과정에서 임대인에게 조정과정에 임하는 것을 강제하기 어렵다. 만약 임대인이 “나도 사정이 어렵다”며 임대료 인하에 동의할 수 없다고 할 경우 강제할 수단도 없다.
나지수 법무법인 더리드 변호사는 “상가임대차보호법 11조는 임대료 인하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규정한 것이지 미이행에 대한 제재권 등이 없다”며 “원칙적으로 임대차 계약은 상호합의해 결정되는 것이어서 법적 구속력을 갖춘 조정결과가 나오려면 임대인의 동의가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우리나라와 법체계가 유사한 일본의 경우 경제환경 급변 시 임대료 조정이 원활히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일본은 임대료 조정 시 조정우선주의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 우리나라와 다른 이유로 꼽힌다.
위평량 서울신용보증재단 소상공인 정책연구센터장은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취약계층인 소상공인들의 임대료 인하 청구권을 보완할 법률개정 논의가 필요해졌다”며 “특히 임대료 인하에 대한 법적 청구권이 있다는 사실을 대다수 소상공인들이 모른다는 점에서 관련 법에 대한 홍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