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11일째 발이 묶인 미국 뉴욕주민들에게 매일 정오 앤드루 쿠오모(62) 뉴욕주지사가 진행하는 브리핑을 보는 것은 중요한 일과가 됐다. 매일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 추이를 알려주고 의료장비 비축 상태와 전망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이 브리핑을 CNN방송은 “꼭 봐야 할 방송”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코로나19가 확산하는 와중에 미국에서 쿠오모 주지사의 인기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11년 뉴욕주지사에 오른 뒤 평등결혼법안(동성 간 결혼 인정), 최저임금 인상 등 굵직한 논의를 주도해온 그는 코로나19 사태로 다시 한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40~50%대에 머물던 지지율을 단숨에 71%로 끌어올린 쿠오모 주지사의 인기 비결은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시원스러운 화법’이다. 지난달 20일(현지시간) 쿠오모 주지사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비필수사업장 폐쇄를 명령하면서 “이번 결정의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비판하고 싶다면 나를 비판하라”고 말해 환호를 받았다. 급격한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그 책임을 자신에게 돌림으로써 신뢰를 얻은 것이다. 지난달 28일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뉴욕을 포함한 3개 주의 강제격리를 고려 중이라고 트위터를 통해 밝히자 쿠오모 주지사는 “대통령에게 그럴 권한이 있느냐”며 반문해 주민의 불안을 달랬다. 또 “연방정부가 필수 의료장비 생산을 위한 명령을 내려야 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강하게 압박하기도 했다.
뉴욕주민들을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쿠오모 주지사를 향해 미국시민들과 국내외 언론의 찬사가 이어졌다. 뉴욕타임스(NYT)의 유명 칼럼니스트인 벤 스미스는 그를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PresidentCuomo(쿠오모 대통령)’ 해시태그가 인기를 끌고 있다. 프랑스 유력 일간지 르몽드는 그를 “신중하면서도 따뜻해 마치 뉴요커의 아버지 같다”고 묘사했다.
쿠오모 주지사는 취임 초기인 2011년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내용의 평등결혼법안 통과를 추진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뉴욕주의회의 다수당은 동성결혼에 부정적인 공화당이었다. 쿠오모 주지사는 공화당원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월스트리트의 공화당 거액 기부자들을 꾸준히 설득했다. 쿠오모 주지사의 노력으로 기부자들이 마음을 돌리자 공화당은 법안을 상정했고 평등결혼법안은 결국 뉴욕주의회를 통과했다.
쿠오모 주지사의 능숙한 정치술은 오랜 경력을 통해 축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의 아버지는 20세기 명연설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마리오 쿠오모 전 뉴욕주지사다. 올버니법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검사로 재직했던 쿠오모 주지사는 아버지의 선거 당시 고문 역할을 하며 당선을 도왔다. 빌 클린턴 행정부 출범과 함께 주택도시개발부(HUD) 차관보를 거쳐 장관으로 일했고 2007년에는 뉴욕주 검찰총장 자리에 올랐다. 20대 때부터 뉴욕과 워싱턴을 드나들며 정치경험을 쌓은 것이다.
대중적 인기를 기반으로 노련한 정치능력까지 입증된 쿠오모 주지사는 최근 차기 대선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도 폭스뉴스 토크쇼 ‘폭스앤프렌즈’에서 “(민주당 대선후보로) 조 바이든보다 낫다”고 말했다. 하지만 쿠오모 주지사는 같은 날 진행된 브리핑에서 “지금은 정치할 때가 아니다”라며 “나를 정치에 끌어들이지 말라”고 했다. 친동생이자 나흘 전 코로나19 확진 소식을 알린 크리스 쿠오모 CNN 앵커와의 인터뷰에서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한 질문에 그는 일곱 차례나 “NO(싫다)”라고 답하며 쐐기를 박았다. 이 같은 부인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치적 이력은 중앙무대를 향해 한 발짝씩 나아가는 모양새다. /곽윤아기자 or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