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의 여파로 현대중공업(009540)의 대우조선해양(042660) 기업결합심사를 일시 유예했다. 코로나19 사태 해결에 행정력이 집중되면서 심사 업무에 제동이 걸린 셈이다.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그룹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이 해를 넘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관련기사 17면
3일 EU 집행위원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코로나19의 여파로 고객사와 경쟁업체·공급협력사 등 제3자로부터의 정보수집에 어려움이 있다”며 “모든 EU 위원회의 업무 또한 지난달 16일부터 취해진 원격근무 조치로 정보 및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접근 및 정보교환이 제한됨에 따라 심사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EU는 이어 “빠진 정보가 제공되면 시계는 다시 움직이고 집행위의 결정 시한은 그에 맞춰 조정된다”고 덧붙였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해 7월 국내 공정거래위원회를 시작으로 6개국에서 본격적으로 기업결합심사를 받고 있으며 같은 해 10월 카자흐스탄에서 첫 승인이 났다. 이후 11월 EU 공정위원회에 심사신청서를 제출했다. 당초 EU 집행위는 올해 7월까지 심사 결과를 내놓을 예정이었다.
EU의 이번 심사중단 조치는 코로나19 확산으로 행정력이 부족해진 탓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EU 집행위가 EU 관련 국가의 지원금 승인에 집중하기 위해 진행 중인 주요 기업결합 심사를 유예한 상태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EU의 심사가 지연되면서 나머지 국가들의 심사도 밀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경쟁법 선두주자인 EU의 심사 결과가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EU의 심사가 중단되면서 다른 경쟁국들의 심사일정에도 차질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동희기자 dwise@sedaily.com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기업결합 계획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암초를 피하지 못했다. 3일 두 회사 결합에 대한 유럽연합(EU)의 결합심사 업무가 코로나19로 잠정 중단됐기 때문이다. 경쟁당국들의 ‘바로미터’인 EU 심사가 지연되면서 뒤이을 심사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여기에 일본이 자국 조선업 보호를 위해 세계무역기구(WTO)에 한국을 제소하며 몽니를 부리고 있고 노동조합의 계속되는 반발도 부담을 더한다. 내우외환이다.
EU가 심사 중단을 결정한 것은 코로나19로 조사 대상자인 고객사를 비롯한 경쟁업체·공급업체들로부터 정보를 제때 제공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회의가 취소되고 재택근무 체제에 들어가면서 질의서 답변 제출 등에 어려움을 겪은 것이다.
코로나19가 유럽에서 빠르게 확산하면서 재정지원 관련 업무가 몰려 심사가 지연된 탓도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EU 집행위원회가 EU 관련 국가의 지원금 승인에 집중하기 위해 진행 중인 주요 기업결합 심사를 유예한 상태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대우조선해양과의 기업결합을 성사하려면 EU를 비롯해 일본·중국 등 5개국 공정거래당국의 심사를 넘어서야 한다. 결합이 해당 국가 소비자 및 관련 산업에 독과점에 따른 피해를 줄지에 대한 심사를 통과해야 승인을 받게 된다. 이 중 한 곳이라도 반대하면 그 시장은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결합이 어렵게 된다.
특히 경쟁법이 발달한 EU의 심사를 뚫는 것이 관건이다. EU 경쟁당국이 내놓을 결론이 뒤이을 경쟁국들의 심사 잣대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EU의 심사 중단이 다른 경쟁국의 심사일정을 지연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인 셈이다.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는 “일시적인 유예 상황에서도 EU 집행위원회와 건설적인 대화를 이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조선업계 회생을 위해 기업결합을 서둘러야 하는 현대중공업그룹에 EU는 넘어야 할 큰 산이다. 유럽은 국내 조선업계의 고객사인 선주사 대부분이 밀집돼 있는 곳이다. 선주들은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국내 3개 업체가 치열하게 가격경쟁을 벌이면 싼값에 품질이 좋은 배를 사갈 수 있었다. 하지만 세계 1·2위 업체인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결합하면 선주사의 가격 협상력이 약해져 선박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 선주가 두 회사의 결합을 반기지 않는 이유다.
갈 길이 먼 가운데 일본의 견제가 계속되는 점도 불안요소다. 일본은 지난 1월 두 회사의 결합이 WTO 협정을 위반한 것이라며 제소하는 등 견제구를 계속 날리고 있다. 조선업계에서는 기업결합 심사를 관련 법령에 따라 진행하기 때문에 일본이 인수를 불허하지는 못하겠지만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우면서 결정을 지연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일본 조선업이 한국에 밀려나고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태클을 건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일본 조선업계는 액화천연가스(LNG)선 등 주력 선종 기술력이 뒤지면서 사업을 축소하거나 매각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외적인 어려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내부에서는 노조가 지난해 5월 시작된 임금협상 이후 파업과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노조는 지난달 27일 해고자 복직, 특별위로금 지급 등 요구를 들어주면 물적분할(법인분할) 무효 소송을 취하하겠다고 밝혔다. 사측은 동료 폭행 혐의로 해고된 직원들 문제는 따로 태크스포스(TF)를 꾸려 논의하자는 입장이지만 노조는 수용하지 않고 있다.
/한동희기자 dwis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