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 뮐루즈


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 ‘마지막 수업’의 배경인 프랑스 알자스 지방. 이 지역에는 노란 유채꽃과 초록의 밀밭이 펼쳐진 아기자기한 도시가 있다. 바로 ‘물방앗간’이라는 뜻의 뮐루즈다. 화이트와인의 명산지답게 뮐루즈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레위니옹 광장의 테라스에서 화사하면서도 독특한 주변 건축물을 바라보며 와인을 마시다 보면 이국적 정취에 빠지게 된다.

낭만의 도시이지만 이곳에는 유럽의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뮐루즈는 인구 11만명의 중소도시이지만 18세기에 유럽 최초로 섬유공장이 세워질 만큼 공업 도시로 자리 잡았다. 라인강에 인접한데다 석탄을 비롯한 천연자원을 다량생산하면서 인근 지역의 경공업과 제철공업을 발전시키는 모태가 됐다. 이 때문에 작은 도시임에도 국립자동차박물관과 유럽 최대의 기차박물관, 전기에너지박물관·직물박물관 등이 줄줄이 들어섰다.


하지만 공업 발전은 역설적으로 불행의 씨앗이 됐다. 독일과 프랑스의 국경에 위치한데다 자원까지 풍부한 곳이어서 두 나라는 뮐루즈를 품에 넣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웠다. 뮐루즈는 처음에는 독립공화국이었지만 프랑스혁명 후인 1798년 시민투표에 의해 프랑스령이 됐다. 그러나 프로이센과 프랑스 간 전쟁이 터지면서 1871년 독일령으로 바뀐다. 당시 얘기를 쓴 게 ‘마지막 수업’이다. 이 지역의 비극은 20세기 들어 더 심해졌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령으로 재편입됐지만 2차 세계대전 발발 후 다시 독일에 넘어갔다가 전쟁이 끝난 뒤 재차 프랑스령이 된다. 뮐루즈는 1·2차 대전 중 알자스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곳이다.

뮐루즈 시내 복음주의 교회인 ‘열린 문’이 정부의 집회 금지를 무시하고 대규모 행사를 주최한 뒤 2,500여명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예배에 참석한 한 신도가 확진자였는데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거나 껴안고 예배를 진행하면서 무더기 전염이 이뤄진 것이다. 과도한 신앙이 코로나의 온상이 된 셈이다. 뮐루즈가 전쟁 참화의 슬픈 역사를 이겨냈듯 코로나19도 빨리 치유해 낭만의 향취를 되찾기 바란다.

/김영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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