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곤(왼쪽 세번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지난달 27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부동산 대책 합동 기자회견에서 종부세 감면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이낙연(오른쪽) 더불어민주당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이 지난 2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공동상임선거대책위원장이 5일 선거 유세 도중 기자들과 만나 ‘종합부동산세 관련해 정부 정책에 변화가 있느냐’는 질문에 “당 지도부에서 협의를 했다. 그렇게 조정이 됐다”고 답하면서 유권자들은 또다시 촉각을 곤두세워야만 했다. 이 위원장은 더 나아가 “(당정청 간 논의를 ) 앞으로 해야죠”라며 종부세와 관련한 정책 급선회 가능성마저 시사했다.
여당이 종합부동산세 강화를 외쳤다가 돌연 완화를 내세우는 갈지자 행보를 보이는 것은 강남·분당 등 ‘더불어민주당 험지’ 후보들을 지원하기 위한 ‘일보 후퇴’로 풀이된다. 특히 종부세 시행 후 치러진 지난 2006년 지방선거에서 겪은 ‘수도권 대참사’가 재연돼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도 배경에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당은 지난해 5월 발의된 ‘1주택자 종부세 감면법’을 방치해온 터라 갑작스러운 종부세 감면 주장에 신뢰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민주당이 총선을 앞두고 변죽만 울릴 것이 아니라 확실한 당론을 정해 국민들에게 종부세 감면을 약속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서울 서초·강남·송파, 경기 성남 등 ‘민주당 험지’ 지역 후보들은 이낙연 공동상임선거대책위원장이 꺼낸 ‘1주택자 종부세 감면 시사’를 두 손 들어 환영했다. 전현희(강남을) 후보는 5일 보도자료를 통해 “1세대 1주택을 장기보유하고 있는 실거주자들에 대한 종부세 감면 등 주민 재산권 보호 대책을 21대 총선 부동산 공약으로 채택했다”고 밝혔다. 전 의원은 2016년 결성된 수도권 험지 의원 모임인 ‘험지쓰’ 소속이다. 이들은 지난해 12·16대책이 발표된 후 꾸준히 당 지도부와 청와대에 ‘부동산 규제 완화’를 요청해왔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겠다”는 정부의 강경 대응 기조와 정반대의 기조인 셈이다. 엇갈린 목소리를 낸 것이다. 험지쓰 소속 의원들은 2월부터 꾸준히 ‘1주택자 대출 완화’ ‘1주택 장기 보유자 종부세 감면’ 등을 당에 요구했다. 지난달 27일에는 전 의원을 비롯한 14명의 예비후보들이 ‘종부세 세율 축소’를 공동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표심 앞에서 정부와 엇박자 내기는 친문 의원들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측근으로 꼽히는 황희(서울 양천갑) 후보는 “정부 부동산 정책의 최종 목표는 무주택자가 1주택을 얻거나 안정된 전세를 살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전셋값은 오르고 1주택에 대한 세금도 과다하다”고 비판했다. ‘문재인의 호위무사’라 불리는 최재성(송파을) 후보도 종부세에서는 다른 목소리를 낸다. 송파을은 최 후보가 2018년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후 초고가 아파트인 ‘송파 헬리오시티’가 지역에 입주하며 선거 지형이 완전히 바뀌었다. 1만여가구의 표심을 잡기 위해 최 후보는 ‘종부세 감면’ 스피커를 자처하고 있다.
이처럼 여당 내부에서 종부세 감면 요구가 확산하는 또 다른 이유는 부동산 규제가 선거 참패로 이어졌던 2006년 지방선거의 트라우마가 있어서다.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야당인 한나라당에 서울시장과 경기도시장을 모두 넘겨준 것은 물론이고 기초자치단체장도 싹쓸이당했다. 한나라당이 서울 25개 자치구를 모두 석권했을 뿐만 아니라 경기도에서 구리시를 제외한 27곳을 쓸어간 것이다.
당시 열린우리당의 참패 원인에는 당 지도부의 분열, 대연정 파동 등이 작용했지만 ‘종합부동산세 추진’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악영향을 미쳤다. 2003년 노무현 정부가 종부세 신설을 결정하고 2005년 시행하자 ‘세금폭탄’ 여론이 불며 지지율은 급락했다. 부동산 세금이 불붙는 민심 악화에 기름을 들이부은 격이다.
그러나 지금의 여당 내 종부세 완화 움직임의 현실화 가능성에는 물음표가 붙는다. 지난해 5월 1주택자 종부세 완화 법안이 발의됐지만 방치된 상태인 것만 봐도 실현 의지 자체가 의문이기 때문이다. 최재성 의원은 14년 이상 1주택에 실거주한 이에게는 장기보유세액공제율을 100% 적용해 사실상 종부세를 부과하지 않는 내용의 종부세 개정안을 냈다. 1주택자의 장기보유공제 기간을 더욱 세분화하고 실거주자의 공제율은 한층 높이는 내용도 담겼다. 그러나 법안은 기획재정위원회 소위원회에 상정만 되고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 유령 안건으로 지금껏 계류돼 있다.
오히려 당은 ‘3주택자 이상 종부세 세분화’ 등 종부세 확대 방안에 박차를 가하는 모양새다. 이해찬 대표는 1월 “3주택을 보유하고도 세금을 많이 낸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지적했고 기재위 간사인 김정우 의원은 “주택 3채를 소유한 사람과 5채를 보유한 사람에게 동일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조세정의 측면에서 적정한지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당이 부동산 정책에 대한 확실한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금 시점에서는 부자든 뭐든 감세해서 소비를 진작하려고 전 세계적으로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역행하는 게 바람직한 것이냐”며 종부세 완화를 주장했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는 “종부세 이중과세 논란이 계속 있다”며 “과세 부담 완화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인엽기자 insid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