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여현 부산 남구보건소 의무사무관이 부산 남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 설치된 양방향 워킹스루 부스에서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남구
이철재 고려기연 대표
“조금 전에 미국의 한 기업에서 ‘양방향 워킹 스루’ 10대를 수입하겠다고 알려왔습니다. 지난달 30일 시연하고 8일 지났는데, 벌써 연락이 왔네요. 그동안 각 국에서 제품 시연을 언제 하느냐는 요청이 많았거든요. 현재 필리핀, 카타르에서 주문한 제품은 만들고 있고 50여개국과 수출을 논의 중입니다.”
이철재(70·사진) 고려기연 대표는 7일 본지와 전화 통화를 마치자마자, 다시 전화를 걸어와 미국 한 기업과 수출 계약을 성사될 것이라고 들뜬 목소리로 알려왔다. 1985년 설립된 고려기연은 화학, 전자 에너지 분야에서 필수 장비인 글로브 박스(glove box) 국산화에 성공, 이 시장에서 국내 점유율 1위에 올라선 중소기업이다. 고려기연은 최근 밀폐용기에 달린 장갑을 끼고 제품 제작과 실험을 하는 글로브 박스 기술을 응용해 양방향 워킹 스루를 만들었다. 지난달 30일 부산 남구보건소에서 이 제품을 공개 시연했다. 이 대표는 “양방향 워킹 스루에 대한 해외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며 “미래 세대를 키울 의료 사업을 키우겠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고려기연의 워킹 스루는 확실한 장점이 있다. 워킹 스루 부스 안에서 피검사자가 들어가는 기존 제품의 ‘진화형’이다. 피검사자가 부스 밖에서도 검사를 받고 부스 안에 있는 검사자는 방호복을 입지 않아도 된다. 고려기연만의 양압·음압 기술을 적용해 부스 안과 밖에서 양방향 검사가 가능하기 때문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감염 우려와 검사 과정의 불편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양압은 부스 내부 압력을 외부 보다 높여 바이러스 침투를 막고, 음압은 반대로 내부 압력을 외부보다 낮춰 바이러스의 외부 유출을 막는다. 그래서 워킹 스루 앞에 ‘양방향’이란 말이 붙었다. 1명 진단 시간은 약 15분에 불과하다. 특히 부산 남구보건소 소속 안여현 의무사무관의 현장 아이디어와 고려기연이 갖췄던 기술력이 합쳐진 제품이다. 이 대표는 “양방향 검사가 이뤄지면 어떻겠느냐고 안 선생님에게 제안하니 ‘좋은 생각’이라는 답이 돌아왔다”며 “보건소와 제품을 개발해야 현장에 더 빨리 적용될 수 있다는 판단으로 (안 사무관과) 공동개발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고려기연은 수출형 기업이다. 2017년 54회 무역의 날에서 ‘천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이런 경험 덕분에 이 대표는 워킹 스루도 글로브 박스처럼 유망한 수출 제품이 될 것이라고 직감했다. 동시에 기술 보호도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이미 제품의 상표 등록을 마쳤고 지난달 특허청에 특허 출원을 했다. 통상 7개월 걸리는 특허 심사를 2개월로 3배 이상 단축할 수 있는 특허 우선심사제를 신청했고,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특허를 인정받을 수 있는 특허협력조약 국제특허출원을 활용할 계획이다. 이 대표는 “특허를 확보해야 전 세계에 제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중국과 같이 제품을 금방 따라할 수 있는 국가와 기업이 많기 때문에 세계로 특허를 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발빠르게 움직였다. 박원주 특허청장이 6일 고려기연 실무진을 직접 만나 신속한 특허 심사를 약속했다고 한다.
현재 고려기연은 워킹 스루를 일주일에 100대가량 생산할 수 있다. 수출 계약을 논의하고 있는 국가와 기업에서는 일차 수입 물량으로 평균 20~30대를 제안하고 있다. 글로브 박스를 통해 이미 해외 판로를 구축했고 브랜드 인지도도 높였다. 이 대표는 “20여 년전 미국에서 탄저균이 묻은 우편물이 발견돼 전 세계가 백색공포를 느끼고 있을 때부터 글로브 박스를 끊임없이 개선해왔다”며 “전 세계의 감염병 위협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갖고 미래 세대를 도울 의료 사업을 키우겠다”고 말했다.
/양종곤기자 ggm11@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