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기업 3년새 25%↑...총선 직후가 옥석가리기 '골든타임'

[포스트 코로나19 구조조정 태풍 온다]
<상> 기업 살리되 한계기업은 솎아내야 -中企
건설·기계장비·車부품 등 中企 절반 번돈으로 이자도 못내
1분기 공장경매 44% 급증...항공·여행업 등 연쇄도산 위기
당장은 시장불안 진정이 급선무지만 구조조정 틀 마련해야


저금리의 달콤한 과실에 기대 연명해온 ‘좀비기업(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기업)’이 상당한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이들의 줄도산에 방아쇠를 당길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동안 좀비기업 정리가 절실하다는 경제계 요구는 빗발쳤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폭발력은 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지금은 응급상황으로 일단 시장 불안을 진정시키는 것이 급선무지만 앞으로 닥칠 ‘포스트 코로나’ 국면에서는 모든 기업을 다 살릴 수도 없고, 살려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치적 판단이 배제된 ‘기업 옥석 가리기’가 필수여서 지금부터 원칙과 절차를 마련하는 구조조정의 틀을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쌓여만 온 좀비 중기…건설업·기계장비·車부품에 집중=좀비기업들은 중소업계를 중심으로 누적된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부실 요주의’ 기업으로 분류되는 ‘세부평가’ 대상이 늘고 있다. 지난 2016년 2,637개에서 지난해 3,307개로 3년 사이 670개(25.4%)나 급증했다.

세부평가 대상기업은 최근 3년 연속 영업활동 현금흐름이 마이너스이거나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이자보상배율 1 미만) 상황 등을 기준으로 채권은행이 선정한다. 대기업은 같은 기간 602개에서 599개로 소폭 줄었지만 중소기업이 2,035개에서 2,708개로 빠르게 증가했다. 이 중 구조조정 수술대에 오르는 ‘부실징후 기업’도 지난해 210개로 전년에 비해 20개(10.5%) 늘었다. 한국은행 통계를 봐도 지난해 상반기 현재 이자보상배율 1 미만인 기업은 37.3%에 달했고 특히 중소기업은 49.7%였다. 중소기업 절반이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업종별로 보면 건설기업 중 이자보상배율 1 미만인 곳이 2016년 전체의 17.7%에서 2018년 30.9%로 증가했고, 특히 중소건설사는 21%에서 33.1%로 불어났다. 부실징후 중소기업을 업종별로 보면 기계장비가 34개로 가장 많았고 부동산이 18개, 금속가공이 17개, 자동차부품이 16개 순이었다.

◇코로나19가 트리거…연쇄 도산 속출할 듯=강인수 숙명여대 교수는 “정부 지원에도 한계가 있어 이번 사태로 좀비기업이 상당히 정리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징후는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올해 1·4분기 전국 공장, 아파트형 공장 등 공업시설 경매 건수는 599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416건)에 비해 44%나 불어났다. 경매는 소유자가 자발적으로 입찰에 부치는 ‘공매’와 달리 금융기관 등 채권자가 법원에 신청하는 것으로 사실상 폐업으로 간주된다.

항공·여행업도 심상치않다. 이스타항공이 300명의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데 이어 다른 업체들도 뒤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월 숙박·음식업종에서 5만3,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여행사가 포함된 사업시설관리업에서도 1만2,000명이 줄었다. 비관적 반응도 늘어 최근 중기중앙회가 407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3개월 이상 감내할 수 없다는 기업은 42.1%, 6개월 이상 버티기 어렵다는 답변은 70%에 달했다.

◇정부·정치권의 無의지에 제도 허점이 더해진 합작품=상황이 여기까지 온 것은 정부와 정치권이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을 외면해왔기 때문이다. 제도적 허점도 있었다. 구조조정은 크게 채권단 주도의 워크아웃, 법원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로 나뉜다. 첫번째 단계인 워크아웃은 채권은행의 신용위험평가에서 시작되는데, 은행 입장에서 굳이 깐깐하게 심사할 유인이 적었다. 워크아웃에 들어가면 새롭게 돈을 지원해줘야 하지만 그만큼 은행은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이에 따라 지금 같이 시장 불안 심리가 팽배할 때는 안정을 유도하는 게 우선이지만 코로나19 사태가 끝날 때를 대비해 구조조정의 확고한 틀을 정립해놓아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는 “좀비기업 정리 사령탑을 기획재정부가 맡고 정치적 고려도 배제해야 한다”며 “총선이 끝나면 당분간 선거가 없으니 옥석 가리기의 ‘골든타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정부가 실업에 대비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해 구조조정의 부담을 줄이고, 채권은행의 기업심사 때 기업의 성장잠재력까지 볼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태규·박경훈기자 classic@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