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리는 수화기를 들고 너를 사랑해/눈물을 흘리며 말해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고/야윈 두손에 외로운 동전 두개뿐’ (O15B 1집 수록 ‘텅빈 거리에서’에서)
1990년. LP로 발매되는 음반에서는 공중전화 부스에서 떠나간 연인을 향한 마음을 삼키는 애절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렀다. 동전 두 개를 들고 공중전화를 찾던 연인들은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든 연락을 주고받게 됐다. 한 장 두 장 사모으던 LP와 카세트테이프는 어느덧 CD를 거쳐 스트리밍·음원 시대에 이르렀고, 한국의 대중가요는 K팝이라는 거대한 산업으로 발전했다. 그 사이 스쳐 지나가거나 대중의 기억 속에서 지워진 가수들은 무수히 많다.
부침이 심한 가요계에서 30년 동안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기는 쉽지 않다. 그것도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도전을 거듭하기는 더더욱 그렇다. 올해 한국을 대표하는 ‘프듀싱어’(프로듀서+가수)인 윤상·윤종신의 데뷔 30주년이 의미있는 이유다. 1990년 나란히 데뷔한 이후 지금까지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현역 가수이자 프로듀서로 의미있는 행보를 이어온 두 사람의 30년 궤적을 살펴봤다.
윤종신. /사진제공=미스틱스토리
두 사람은 모두 1990년에 데뷔했지만 가수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91년부터라고 볼 수 있다. 윤상은 1990년 앨범을 발매한 후 1991년부터 방송 활동 등을 통해 얼굴을 알렸고, 윤종신은 1990년 015B 1집 ‘텅 빈 거리에서’의 객원 가수로 데뷔한 후 1991년 솔로 1집 앨범 ‘처음 만날 때처럼’을 발표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공통점 중 하나는 쉼없는 ‘도전정신’이다. 윤상은 데뷔곡인 ‘이별의 그늘’ 등이 큰 사랑을 받으며 당시 지금의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자랑했다. 하지만 그는 잘생긴 외모를 갖는 감미로운 발라드 가수로서의 인기에 안주하는 대신 자신만의 음악을 하기 위한 시도를 이어갔다. 윤상이 1996년 발매한 ‘레나시미엔토(Renacimiento)’는 그의 히트곡들을 이국적으로 편곡해 해외 가수들이 부르게 한 앨범이다. 그의 월드뮤직에 대한 관심이 드러난 앨범이자 이전에 없던 새로운 시도였다. 이후 2003년 돌연 유학을 떠난 그는 버클리음대 뮤직신서시스학과와 뉴욕대 대학원 뮤직테크놀로지학과를 거치며 음악적 도약에 성공했다. 7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친 그는 일렉트로닉 뮤지션들과 실험적인 사운드의 전자 음악을 선보이며 국내 전자음악의 선구자이자 ‘음악인들의 음악인’으로 확고한 입지를 굳혔다.
윤상. /사진제공=오드아이앤씨
요즘 10대~20대에게는 예능인으로도 익숙한 윤종신은 예능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성공했다. 2000년대 초 MBC 시트콤 ‘논스톱’ 등에 출연하며 연기자로서 활동 스펙트럼을 넓혔으며, 2007년부터 12년 간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 MC로 활약하는 등 재치있는 입담으로 치열한 예능의 세계에서 살아남았다. 음악인으로서의 도전도 멈추지 않았다. 2010년부터 ‘월간 윤종신’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한, 매월 디지털 싱글 음원을 발표하는 프로젝트는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현재 윤종신은 ‘월간 윤종신-이방인 프로젝트’를 위해 모든 방송 활동을 중단하고 지난해 11월부터 해외에 머물며 또 한번의 도전에 나서고 있다. 윤종신은 앞서 자신의 SNS를 통해 “낯선 곳을 떠돌며 이방인의 시선으로 콘텐츠를 만들어 보려 한다”며 “도태되지 않고 고인 물이 되지 않으려는 한 창작자의 몸부림”이라고 밝혔다.
대중음악계의 대선배들답게 이들은 후배 가수 양성에도 힘을 아끼지 않는다. 윤상에게는 걸그룹 ‘러블리즈’의 아버지라는 별칭이 있다. 자신의 작곡팀 ‘원피스’와 걸그룹 러블리즈의 총괄 프로듀싱을 맡아 2014년 ‘러블리즈’의 데뷔 앨범 타이틀곡 ‘캔디 젤리 러브(Candy Jelly Love)’등을 작곡, 편곡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2016년 ‘러블리즈’의 두 번째 미니앨범 쇼케이스 당시 “나는 지금 20대 프로듀서들보다 더 어린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한다. 프로듀서들의 나이의 차이 때문에 ‘러블리즈’가 손해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미스틱스토리 대표 프로듀서인 윤종신은 ‘월간 윤종신’을 통해 매달 신곡을 내고 많은 가수들에게 곡을 주기도 하는 등 왕성한 프로듀싱을 이어가고 있다. 큰 사랑을 받은 성시경의 ‘거리에서’ ‘넌 감동이었어’도 윤종신이 작곡한 것이다. 엠넷 ‘슈퍼스타K’ 시리즈와 JTBC ‘팬텀싱어’ ‘슈퍼밴드’ 등의 심사위원을 맡아 섬세한 심사평을 보여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들이 여전히 빛나는 이유는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과거의 영광에 머무르기보다는 지금 자신의 음악을 보여주는 것도 멈추지 않는다. 윤상은 지난해 인터뷰에서 “몇 년 전에 7집을 준비하다가 몇 곡 녹음한 뒤 뒤집어 엎었다. 제 언어는 어떤 걸까 아직 찾고 있는 단계”라며 새 앨범을 준비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윤종신은 지난 2017년 ‘좋니’로 데뷔 27년 만에 1위를 하기도 했다. ‘이방인 프로젝트’ 후 그가 새롭게 선보일 음악에 대한 기대도 높다.
서정민갑 대중음악평론가는 이들이 “한국 대중음악계의 ‘올드보이’들”이라고 표현하며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한국 대중음악이 변해가는 시기에 자신만의 역할을 해 온 이들이다. 윗세대와 젊은 세대들을 모두 아우르며 현재까지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는 이들의 노력과 시도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평했다.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