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신 전경련 상근부회장 겸 한국경제연구원장이 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 부회장은 “코로나19의 경제적 충격이 오래갈 것이기 때문에 최소 2년 동안은 기업의 핵심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형주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기업들의 경영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재계의 어려움을 대신 전달하는 경제단체의 역할은 이런 점에서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 겸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적 충격을 극복하려면 최소 2년 동안은 주 52시간 근로제 등 기업에 대한 핵심 규제를 유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대기업 하나가 무너지면 중소기업 몇천개가 무너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며 “정부가 큰 기업이라고 해서 방치하면 협력업체와 영세기업들까지 동반해 어려워지는 만큼 대기업에 대한 지원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고 각별히 주문했다. 권 부회장을 9일 만나 코로나19 이후 기업 경영상황과 위기타개 방안을 들어봤다.
-코로나19에 대한 경제적 진단이 비관적으로 바뀌는 것 같다. V자형 경기반등이나 U자형 회복은 힘들고 나이키형으로 회복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데.
△나이키형 회복이나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말한 것처럼 경기가 급전직하하는 I자형이 될 것 같다. 나이키형은 L자형에 가깝게 진행될 텐데 회복 속도가 심각할 정도로 느리고 예측 불가능하게 진행될 것 같다. (전염병이 언제 차단될지 모르니) 지금은 전 세계 경제학자들도 어떻게 될지 제대로 모른다는 것이 맞다.
-위기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것이 불안을 더 증폭시키는 것 같다.
△외환위기 때는 외환이 부족했고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금융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실물의 공급과 수요 모두가 문제다. 사람들이 안 움직이고 안 사니 멀쩡한 대기업도 현금 흐름에 문제가 생기고 공급체계가 무너진다. 금융회사 부실로 가면 금융위기로 번질 수 있다. 무엇보다 옛날처럼 국제공조도 안 되는 것이 문제다.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대책을 꺼내는데 현시점에서 어떤 대책이 유효하다고 보는가.
△이번 위기는 실물이나 금융 시스템 한 부분이 아니라 병균의 문제에서 비롯됐다.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이 도산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기업에 긴급구제자금을 지원하고 중앙은행이 기업어음(CP)이나 회사채를 사들이는 방안이 있다. 미국이 2조달러의 인프라 예산을 추진하기로 했는데 우리도 추가경정예산을 선거용이 아니라 사회간접자본(SOC)에 투입할 필요가 있다. 이 정부 들어 SOC 예산을 많이 깎았다. SOC와 연구개발(R&D) 예산을 늘리면 위기도 극복하고 미래에 대한 대비도 할 수 있다.
-우리 경제상황도 좋지 않다. 한경연은 마이너스 성장을 예상했는데.
△우리는 내우와 외환이 겹쳤다.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 최근 2~3년간 약화됐다. 한국 경제 자체에 기저 질환이 있는 것이다. 지난해 명목 성장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34위였다. 최저임금이 2년 동안 30%가량 올랐고 근로시간 단축 문제까지 마주했다. 코로나19 때문에 52시간제를 예외 적용하려 해도 허가를 얻고 노조 동의까지 받아야 한다. 지난해 우리 기업이 해외에 투자하기 위해 밖으로 내보낸 돈은 618억달러, 외국 기업이 국내에 투자한 돈은 128억달러였다. 이렇게 많이 나간 적이 없다. 세계 경제가 회복되더라도 옛날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자유무역 대신 보호무역주의가 심해질 것이다. 경쟁력 약화와 불리한 국제질서를 동시에 마주한 셈이다. 올해 마이너스 성장이 불가피하다(한경연은 인터뷰 당일 올 성장률 예상치를 -2.3%로 낮췄다).
-기업이 갈수록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당장 소비를 못하니 호텔과 백화점·극장 등이 타격을 받고 있다. 지난달 초에는 호텔 객실이용률이 7개 업체 평균으로 5.6%에 그쳤다. 도소매 가맹점의 절반은 50% 넘게 매출이 감소했다. 4월 위기설이 나올 정도로 기업 유동성 문제가 심각하다. 올해 만기 회사채가 51조원이고 4월 물량만 6조5,000억원인데 소화가 안 된다. 정부가 추경을 위해 국채를 발행하는데 그럴수록 회사채가 팔리지 않는다. 정부가 민간 돈을 빨아들이는 ‘구축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우리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니 사람을 아예 만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한다. 소규모로라도 1.5m 떨어져 얘기하는 물리적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 그래야 내수를 살릴 수 있다.
-현 상황에서 어떤 대책이 필요한가.
△이대로 계속 가면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내는 기업들이 나온다. 외환위기 때보다 심각할 수 있다. 기업이 망하면 안 된다. 특히 한국은행의 역할이 중요하다. 물가뿐 아니라 다른 나라 중앙은행처럼 경제성장과 고용안정을 목표로 적극적인 통화정책을 펴야 한다.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OECD 국가 중 33위일 정도로 물가가 낮다. 한은이 물가를 걱정할 때가 아니다. 한은법 1조를 고쳐서라도 최종 대부자의 기능을 해야 한다. 한은이 회사채와 CP를 직접 사서 부도가 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나라와 기업을 살려야 한다.
-정부는 대기업에 유보금 등으로 우선 해결하라고 한다. 대기업 지원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여전하다.
△우리 경제에서 대기업이 큰 역할을 하는데 그에 대한 관심은 너무 소홀하다. 외환위기 때 30대 기업 중 16개가 문을 닫았는데 대우의 경우 협력사가 수만개였고 종사자도 16만명이었다. 대기업이 넘어지면 파급이 중소기업과 영세기업에 고스란히 전달된다. 대기업 하나가 부도나면 중기 몇천개가 무너지는 것과 같다. 몇십만명의 실업자가 나온다. 계급투쟁하듯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구별해서 바라보면 외환위기 때처럼 대기업들이 줄도산한다. 이런 점을 생각하지 않으니 안타깝다.
-공무원이나 일선 금융회사들은 여전히 보신주의에 빠져 있다.
△현 정부 들어 소위 ‘변양호 신드롬(공무원의 보신주의)’이 더 심해진 것은 이전 정부를 부인하려 하기 때문이다. 과장급까지 전(前) 정부에서 중요 직책을 맡았다고 한직으로 보내는 상황에서 누가 구조조정의 총대를 메려 하겠는가. 감사원이 일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대로 두고 적극적으로 일한 사람을 처벌하니 아무도 나서지 않는 것이다.
-구조조정을 얘기했는데 이를 책임지고 추진할 기구가 없다.
△이런 위기상황에서는 야전군사령관을 확실하게 임명하고 책임과 권한을 줘서 추진해야 한다. 구조조정에는 신속성·정확성·일관성이 중요하다. 그렇게 하려면 금융위원장에게 권한을 줘야 한다. 권한과 책임이 분명하지 않으면 적군보다 내부와의 싸움이 더 심해질 수 있다.
-전경련이 최근 위기극복을 위한 규제 완화 방안을 여당에 전달했는데.
△코로나19 전염병이 해결돼도 경제는 금방 회복되지 않는다. 서플라이체인(공급망) 자체가 무너져 코로나가 끝나도 한꺼번에 복구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2년이 걸리는데 그 기간만큼은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국무총리실장이던 지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도 한시적 규제유예 제도를 만들었다. 무엇보다 주 52시간제 예외 방안을 빨리 시행해야 한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제의 경우 한 달에 두 번씩 쉬는 것을 예외로 하고 쉴 때 온라인으로 구매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풀어야 한다. 화평법(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내의 화학물질 등록 의무도 예외로 해야 한다. 지금처럼 어려울 때 이런 규제의 굴레를 씌우면 되겠는가.
-규제 완화로 부가가치를 생산할 다양한 방안이 있을 텐데.
△코로나19 이후 보호무역이 심해지면 더는 수출만으로 안 된다. 내수를 살려야 한다. 다른 나라의 서비스 산업 비중이 70%가량 되는데 우리는 60%밖에 안 된다. 관광·물류·의료 등을 육성해야 한다. 그동안 각종 서비스 산업 육성 방안이 시민단체 등에 다 막혔다. 고급 일자리를 많이 만들 수 있는 개방형 병원, 유명 외국학교 유치, 복합 레저시설 등이 모두 안 됐다. 우리가 먼저 시작한 동북아 금융허브·물류허브도 뒤늦게 출발한 중국 상하이, 싱가포르에 다 빼앗겼다. 드론·인공지능(AI)·우버·에어비앤비·원격진료 등과 같은 4차 산업의 규제가 너무 많다. 내수 업종들에 제조업에 준하는 혜택을 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현 정부의 정책 기조를 바꿔야 한다는 주문도 많다.
△중요한 것은 기저 질환이다. 병이 나게 만든 요인들을 되돌려놓아야 한다. 어떻게 해야 기업들이 우리나라에 투자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노동개혁과 규제개혁이 가장 중요하다. 파업과 불법행위 등을 하고 적자 상황에서도 임금을 올려달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는가. 탈원전도 마찬가지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값싼 것이 한국형 원자력발전소다. 탈원전 기조를 바꾸기 힘들면 신한울 3·4호기라도 공사를 재개해 일자리를 늘리고 중소기업을 살려야 한다.
-세제에서도 우리 기업이 외국에 비해 불리하지 않은가.
△전 세계가 경쟁적으로 친기업에 나서고 있는데 우리는 대·중소기업 간 대립개념 때문에 대기업이 경쟁력을 잃어 세금도 안 걷힌다. 지난 10년간 주요7개국(G7)은 법인의 최고세율을 평균 5.4%포인트 낮췄다. 각종 시설투자세액공제를 늘렸는데 우리는 대기업에 대해 줄여왔다. 투자세액공제와 R&D세액공제를 늘려야 한다. 준조세처럼 부과되는 각종 부담금도 차제에 줄여 기업 부담을 낮춰야 한다.
/김영기논설위원 yo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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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경북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행정고시 19회로 공직에 들어왔다. 재정경제부 국제금융심의관과 주영대사관 재경관, 청와대 정책기획비서관을 거쳐 재경부 차관과 경제협력개발기구(OCED) 대사, 국무총리실 실장,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지냈다. 2014년 한국경제연구원장을 맡은 뒤 2017년부터는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을 겸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