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의 한 영어유치원에서 학부모들에게 보낸 확인서. /독자제공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유치원 개학 무기한 연기를 결정했지만 학원으로 분류되는 영어유치원(유아 대상 어학원)은 개원을 강행하면서 학부모들이 반발을 하고 있다. 일부 대형 영어유치원들은 학부모 의견도 구하지 않고 개원을 하면서 학부모들에게 친필이 담긴 확인서까지 요구해 논란이 되고 있다.
9일 서울경제가 제공받은 서울 강남구의 한 영어유치원 안내문을 보면 이곳은 지난주 학부모들에게 이달 13일 개원한다고 공지했다. Y어학원 계열의 이 유치원은 “계속되는 장기휴원에 따라 학원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유아 대상 원아들을 상대로 온라인학습이 불가능하고 더 이상의 휴원은 경영 사정상 어렵기에 소독과 방역에 최선을 다하고 사회적 거리두기 교육을 실천하며 4월13일 개강을 진행하고자 한다”고 안내했다.
어린이들이 원어민 교사가 진행하는 영어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미지투데이
특히 이 영어유치원은 각 가정에 13가지 예방수칙을 지킨다는 확인서를 배포하고 학부모에게 일부 공란을 자필로 채우도록 했다. 그러면서 학부모에게 서명을 요구하고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시 역학 조사를 위해 이 확인서를 6개월 동안 보관하겠다면서 등원 전까지 확인서를 보내주지 않으면 등원이 제한된다고 알렸다. 수칙에는 학부모들이 음식점·카페 등 마스크를 내릴 수밖에 없는 장소에 가서는 안 되고 가더라도 포장(테이크아웃)만 가능하다고 적었다.
확인서를 받아 든 학부모들은 유치원이 학부모 의견도 구하지 않고 개학을 강행하면서 코로나19 예방 책임을 학부모에게 전가하기 위해 일종의 각서까지 요구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 학부모는 “각서 형태라니 (학원이) 어떤 걸 약속하길 원하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다른 학부모는 “학원에서 유아들이 수업시간 동안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하겠다지만 아이들이 어른들도 답답해하는 마스크를 종일 쓰고 있을지도 믿을 수 없다”며 개원을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달에도 서울 강동구의 K영어유치원이 23일 개학을 강행하기로 해 논란이 됐다. 이 유치원은 전체 원생의 15%가 등원을 희망했다면서 오프라인 수업과 온라인 수업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학부모들에게 안내했다. 그러면서 오프라인 수업 시 100%, 온라인 수업 시 70%의 원비를 내야 한다면서 “대기생이 있을 경우 학생의 자리가 보장되지 않음을 양해해달라”고 안내했다. 이곳은 학부모들의 반발에 부딪혀 이달 13일로 개학을 연기했다.
정부는 최근까지 코로나19 확진자가 잇따라 발생하자 9일부터 초중고교 순차 개학을 결정한 반면 영유아가 다니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대해서는 무기한 개원 연기 방침을 정했다. 하지만 영어유치원은 유아를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학원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일반 유치원처럼 무기한 개원 연기를 적용받지 않는다. 특히 Y어학원·P어학원·S어학원 등 어학원 계열의 대형 영어유치원들이 문을 열면 영어유치원들이 속속 문을 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올 2월 말 기준 영어유치원은 227곳으로 지난 6일 약 20곳이 문을 여는 등 이달 대거 영업 재개에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부모들은 관할 교육지원청에 민원을 넣고 있지만 교육청은 “영어유치원만 특별 단속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창영기자 kc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