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중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장/오승현기자
중국을 여러번 여행한 사람이라면 위조지폐를 받아본 경험이 더러 있을 것이다. 중국에서 택시를 타고 잔돈을 거슬러 받을 때, 호텔에서 보증금으로 낸 돈을 돌려받을 때 위조지폐를 받았다는 후기가 많다. 한국에 돌아와 원화로 환전할 때 비로소 위폐인 것을 알곤 한다. 외국에서 위조지폐로 곤욕을 치른 사람들은 하나같이 ‘한국만큼 위폐가 없는 나라도 없구나’ 하고 안도한다.
이처럼 한국이 ‘위폐청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하게 위폐를 감별해내는 ‘화폐 파수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 한 사람이 이호중(50)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장이다. 그는 외환은행에서 국가정보원을 거쳐 하나은행에 이르기까지 25년째 위조지폐를 감별해온 국내 최고 베테랑이다. 최근 서울 을지로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만난 이 센터장은 “위폐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면 화폐뿐 아니라 그 화폐를 유통한 은행까지 신뢰를 잃게 된다”며 위폐 감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한은에 신고된 원화 위조지폐는 총 267장으로 지난 1998년 이후 가장 적었다. 같은 기간 국내에서 적발된 외화 위조지폐는 1,000여장이다. 이 센터장은 “한국은 외화 위폐가 원화보다 많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위폐 유통이 많은 나라는 아니다”라며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남북 분단으로 유라시아 대륙과 단절된 지리적 특성으로 위폐 유통이 어려워 아시아권에서는 일본 다음으로 위폐가 적은 나라”라고 했다.
이 센터장이 처음 위폐 감별 업무를 시작한 것은 1995년 외환은행에 입사하면서다. 은행원의 꿈을 안고 외환은행에 들어온 그는 외화수출입·외국환규정 업무를 맡으면서 위조지폐를 접했다.
“당시 외환은행에 국내 1세대 위폐 감별사인 서태석씨가 일하고 있었어요. ‘이건 가짜’라고 외치는 TV CF로 일반인들에게는 위폐 감별사로 이름을 떨친 분이죠. 그때는 손으로 일일이 화폐를 만지고 보면서 위조지폐를 구분해내던 시절이에요. 외환은행에서 그분과 같이 근무했습니다.”
위조지폐의 위력을 실감하게 된 것은 입사 이후 6년이 지나 국가정보원으로 이직하면서였다. 그는 “국정원에서 시중은행의 금융 시스템을 정보기관에 접목하기 위해 위폐·금융범죄담당관을 채용했다”며 “외환은행에서의 경험 덕분에 30대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고 말했다.
국정원에서 근무하며 위폐와 관련해 지금도 잊지 못하는 일이 바로 2005년 ‘방코델타아시아(BDA) 사태’였다. 당시 미국 재무부는 마카오은행인 BDA를 북한에서 제조한 위폐를 유통하고 자금을 세탁하는 통로로 지목했다. 미국 정부는 즉각 미국 내 은행과 BDA 간 거래를 금지했고 이에 불안해진 고객들은 BDA에 예치해둔 돈을 일제히 인출했다. 시장에서 신뢰를 잃은 BDA는 끝내 파산했다.
이 센터장은 “은행이 자본주의의 피를 만드는 혈액(화폐)을 잘 걸러내지 못하면 한순간에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라고 강조했다.
이후 미국에서 BDA 사태의 후속으로 한국의 우리은행을 북한 자금세탁의 우려가 있는 기관으로 지목하면서 국내 상황도 긴박하게 돌아갔다. 그는 “당시 우리은행이 개성공단 내 지점을 내고 북한 직원들에게 월급이 나가는 창구여서 미국의 의심을 받았다”며 “우리은행은 위폐를 감지하는 기계를 구입하고 담당 직원을 늘리며 대응했다”고 설명했다.
이때의 경험은 이 센터장에게 큰 교훈을 남겼다.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제안으로 시중은행 최초의 위변조대응센터 설립 작업을 주도하게 된 배경이다. 그는 “예전에 한국의 한 시중은행에서 멕시코의 가짜 페소를 적발해 고객에게 알려준 일이 있었다”며 “위폐로 인한 고객의 피해를 막는 것은 물론 은행의 위폐 유통 리스크를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기꺼이 위변조대응센터 초대 센터장을 맡기로 결심했다”고 웃었다.
위폐를 진짜 화폐와 구분해내는 업무는 간단하지 않다. 위변조대응센터에서 하루에 검수하는 화폐만 50만~100만장이다. 먼저 한 대당 3억원이 넘는 고성능 위폐 정밀검사기에 화폐를 넣으면 기계가 위변조로 의심되는 화폐를 따로 분류해낸다. ‘이상’으로 분류된 화폐들은 30배 확대가 가능한 장치와 적외선·자외선 장치를 이용해 눈에 보이지 않게 숨어 있던 위변조방지 기술 적용 여부를 살핀다. 이 과정을 거쳐 위폐로 최종 판단되면 경찰에 신고한다. 보통 국내에서 적발되는 위폐의 90%는 미국달러화이며 나머지는 위안화·엔화·유로화 등이다.
“자본시장에 건강한 혈액을 공급하고 화폐의 신뢰를 보증하는 게 바로 우리 역할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센터 내 직원들은 의사처럼 흰 가운을 입고 일하죠.”
이 센터장의 새로운 시도가 하나은행에서 처음부터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었다. 센터 초반에는 과학수사대(CSI)에서나 쓸 법한 고가장비를 갖추는 등 위변조대응센터를 설립하는 데 20억원이나 들어간 사실이 알려지면서 내부의 반발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센터를 향한 반대 목소리는 이 센터장과 직원들의 활약으로 금세 사라졌다. 통상 시중은행에서 위폐 감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국내에서 수납한 외화를 해외 은행에 전량 수출하고 필요한 외화를 다시 수입해야 해 외화 수출입 비용이 든다. 하나은행은 센터를 기반으로 이 과정을 생략하면서 지난해 말 기준 외국환 수수료 15억원을 절감했다.
위폐를 적발해내는 실력은 이미 국내 시중은행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7년 위변조대응센터는 인터폴에서도 보고되지 않은 신종 초정밀 위조달러를 발견해 국정원·한은 등 유관기관과 공유했다. 이 센터장은 “2006년판 100달러 지폐를 모방한 슈퍼노트였다”며 “기존 위폐 감별기로도 구별이 어려운 위폐를 세계 최초로 발견한 것”이라고 했다.
얇은 특수용지에 앞뒷면을 인쇄해 합친 뒤 홀로그램을 부착하는 수법으로 제작한 신종 5만원권 위폐를 발견한 적도 있다.
센터의 독보적인 감별 실력은 국내 위폐 적발 현황에서도 드러난다. 2018년 기준 국내 시중은행에서 적발된 외화 위폐의 약 80%가 하나은행에서 보고됐다.
현재 서울 위변조대응센터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14명이다. 모두 은행원으로 입사해 6개월간 위폐감정 고급과정을 통과한 인재들이다. 별도의 전공 제한이 없어 영문학과부터 경영학과·전기전자공학과 등 다양한 전공을 가진 직원들이 교육과정에 지원하고 있다. 교육을 마친 교육생은 2분 내 화폐 100장 중 위폐를 가려내는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통상 100장 중 3~5장가량 섞여 있는 위폐를 정확히 구분해내는 게 핵심이다.
이 센터장은 “교육과정의 경쟁률이 5대1에서 최고 10대1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며 “매년 10명 내외를 뽑아 교육하고 이중 우수한 성적을 낸 직원들을 미국 정보기관, 홍콩 외환시장으로 연수도 보내준다”고 설명했다.
한국이 위폐 청정국이기는 하지만 풀어야 할 과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10년을 주기로 신기술을 접목해 신권을 발행해야 한다는 게 이 센터장의 주장이다.
“위폐범이 추격자라면 중앙은행은 도망자예요. 추격자가 따라오지 못하게 첨단기술을 접목해야 해요. 선진국에서는 이미 10년마다 화폐를 바꾸고 있습니다.”
현재 사용하는 1만원권이 처음 도입된 것이 2007년, 5만원권은 2009년으로 모두 10년을 넘었다. 지금이라도 신권 교체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1년 뒤에 신권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국내의 다른 시중은행들도 위폐 감별 업무에 투자할 것을 촉구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국내 은행에서 위폐를 환전해 해외에서 사용했다가 적발되는 일이 있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고객들도 외화를 안심하고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이 센터장은 “시중은행은 자금이 모이는 곳인 만큼 무엇보다 신뢰도가 중요하다”며 “위폐를 감별해내는 사회적 책임에 함께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지영기자 jikim@sedaily.com
<이사람>이호중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장./오승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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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993년 서울시립대 영문학과 △1995년 외환은행 입사 △2001년 국가정보원 위폐·금융범죄담당관 △2004년 한국은행 위조방지실무위원회 상임위원 △2005년 한국조폐공사 위조방지기술위원회 상임위원 △2013년~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