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가족 신상까지 노출...또 활개 치는 ‘n번방’ 자경단

SNS서 신상공개 계정 다수 성행
무분별한 공개로 2차 피해 우려
경찰 "자경단 모니터링·수사중"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오승현기자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유통한 ‘n번방’ 범죄 혐의자들에 대한 신상공개가 이뤄지지 않자 인터넷 자경단들이 다시 활개를 치고 있다. 확실하지 않은 정보를 바탕으로 범죄 가담자와 유료 회원을 가리지 않고 관련 명단을 직접 밝히고 있는 것인데 2차 가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10일 인스타그램·트위터 등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지를 검색해보면 n번방 범죄 혐의자를 신상공개 중이라는 계정이 다수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인스타그램의 한 계정은 범죄 의심자의 얼굴 사진 외 이름·생년월일·직업 등 다양한 인적사항을 함께 노출 중이다. 해당 계정 운영자는 자신을 n번방 사건 피해자의 친인척이라고 소개하며 신상정보 공개를 통해 가해자들을 사회에서 격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사방’ 운영자인 조주빈의 구속 이후 관련 사건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큰 가운데 신상공개 계정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인스타그램의 해당 계정을 구독하는 사람들은 약 3만명에 달하며 게시물 중에서는 댓글이 수천 개에 달하는 것도 있다.


n번방 범죄 혐의자에 대한 신상공개가 무차별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처음이 아니다. 당국이 박사방 운영자 조씨의 신원을 공개한 후 텔레그램 ‘주홍글씨’ 방에서는 다수의 참가자가 성범죄 연루 가해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신상을 공유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SNS 자경단의 경우 개인이 혼자 운영하기 때문에 주홍글씨 방처럼 여러 명이 참가하는 구조는 아니다. 이 때문에 정보의 신뢰성을 담보하기는 더 힘든 수준이다.

잘못된 정보공개에 따른 2차 가해 우려도 커지고 있다. 앞서 주홍글씨 텔레그램 채팅방에서는 성범죄 혐의자 색출이라는 명목으로 가해자 가족 등의 신상정보까지 무분별하게 노출되면서 ‘명예훼손’ 논란이 일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성범죄 혐의가 확실하더라도 가해자의 신상공개는 법원의 결정에 따라서 이뤄져야만 한다”며 “인터넷 공간에서의 자의적인 노출은 정의감에 의해 이뤄졌더라도 정보통신망법 위반으로 형사 처벌을 피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경찰도 n번방 사건과 관련해 무분별한 신상공개를 막기 위해 자경단에 대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경찰청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본부의 한 관계자는 “인터넷 자경단의 경우 몇 개 채널에 대해 자체 모니터링을 하고 있고 책임 수사관서를 지정해 수사를 진행 중”이라며 “2차 피해 노출 등을 이유로 자경단들을 범죄유형에 새롭게 추가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경운기자 cloud@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