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크본드 방치땐 도미노 부도·실업 쓰나미…美연준 '발등의 불' 긴급진화

JP모건 "美 2분기 -40% 성장전망"
파월 "실업률 일시적 매우 높을것"
경기상황 '예상보다 심각' 판단에
금기 깨고 2.3조달러 유동성 투입
투기등급 채권까지 쇼핑 리스트에
'추락 천사' 포드, 델타 등 수혜 예상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중소기업 지원용 ‘메인스트리트 대출 프로그램(MSLP)’과 지방채 매입 등 2조3,000억달러(약 2,786조원) 규모의 유동성 공급을 발표한 9일(현지시간), 시장의 관심은 연준의 투기등급 회사채 매입에 쏠렸다. 미 경제방송 CNBC는 “연준이 쇼핑 리스트를 정크본드로까지 확대하면서 더 큰 바주카포를 쐈다”고 분석했다. 시장에서는 투자적격 등급이었다가 지난달 22일 이후 투기등급으로 강등된 ‘추락 천사(fallen angel)’ 기업인 포드(자동차)·메이시스(백화점)·델타(항공)·웨스턴미드스트림(에너지) 등이 수혜를 입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 연준은 손실이 날 수 있는 투기등급 채권 지원을 극히 꺼려왔다. 회사채 매입이라는 초강수를 연준에 권했던 벤 버냉키와 재닛 옐런 전 연준 의장도 투자등급만 사라고 선을 그었을 정도다. 이날 연준이 발표한 안들은 대부분 지난달 23일 얼개가 공개됐던 것들이지만 정크본드와 지방정부 유동성 공급 등은 새로 추가됐다. 왜 연준은 그동안의 금기까지 깨면서 전격적으로 투기등급 채권시장에 개입했을까.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경기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다. JP모건은 이날 미국의 2·4분기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25%에서 -40%(전 분기 대비 연환산 기준)로 내렸다. 주요 투자은행(IB) 가운데 가장 낮다. 실업률은 20%까지 치솟을 것으로 내다봤다. JP모건은 “3주 새 1,680만명이 실업급여를 신청한 것은 향후 대규모 실업을 암시한다”며 “당초 수요 쇼크만 생각했는데 셧다운에 노동의 질과 효율성이 제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 역시 “지금은 난기류에 있는 시기”라면서 2·4분기 성장률이 매우 취약하고 실업률도 일시적으로 매우 높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례 없는 유동성 조치를 꺼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두 번째 이유는 기업들의 매출 하락과 현금 부족이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외식과 여행·숙박업의 실적 쇼크가 예상된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마켓 인텔리전스가 미국 소비재산업의 부도 가능성을 분석한 결과 백화점의 1년 내 파산 가능성이 42.1%로 1위였다. 호텔 및 크루즈(37.0%)와 여가시설(34.3%), 카지노 및 게이밍(31.2%)도 확률이 높았다. 항공업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별도의 지원 방안을 마련해 이번주 말 발표하겠다고 예고했을 정도다. 피아트크라이슬러와 GM 등 미국의 주요 자동차 업체도 1·4분기 판매실적이 10% 안팎 하락했고 보잉은 최근 신용등급이 두 단계 떨어지며 간신히 투자적격 등급(BBB)을 지켰다. 주요 기업들마저 ‘매출 하락→현금 고갈→부채 증가 및 신용등급 하락→유동성 위기’의 악순환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유동성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3개월 동안 발행된 투자등급 회사채 규모는 887억달러인데, 코로나19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확산한 분기에 기업들이 찍은 채권은 4,337억달러로 4.8배에 달했다. 연준이 1조2,000억달러에 달하는 투기등급 채권시장을 지원하지 않으면 도미노 파산과 그에 따른 실업 증가를 피할 수 없는 상태인 것이다.

셋째로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 같은 약한 고리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의미도 있다. 이날 연준은 CLO와 월세 미납 사태로 부실이 우려되는 주택저당증권(MBS)을 사들인다고 밝혔다. 투기등급 채권을 모아 만든 CLO는 과거 금융위기를 촉발한 부채담보부증권(CDO)과 비슷해 위기에 취약하다. 미국과 유럽에서 발행된 CLO만 약 7,000억달러로 이 중 미국 은행들이 갖고 있는 CLO는 지난해 말 기준 995억달러다. CLO가 부실화하면 채권 문제가 은행으로 전염돼 금융시장 전체를 뒤흔들 수 있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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