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뭘 해도 어중간한 나라, 중국

최수문 베이징 특파원


기자가 학교를 다닐 때 은사께서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중국이 왜 중국인 줄 알고 있니. 대국(大國)은 결코 못되고 소국(小國)까지는 아니니 그냥 중간쯤 되는 나라, 중국(中國)인 거야.” 이 말을 기자가 베이징에 오고 나서 더 절실하게 느낀다. 만사가 애매모호하고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는 나라가 중국이다. 주요2개국(G2)으로도 불리는 중국의 인구와 영토에 위압감을 받기도 하지만 표리부동하다는 말이 절실히 들어맞는 곳이 중국이기도 하다.

지난해 12월13일의 일이다. 이날 새벽부터 미중 1단계 무역합의가 타결됐다는 미국 언론의 보도로 온라인이 도배됐다. 기자는 중국 중앙(CC)TV에서의 중국 측 발표나 분석을 기다렸다. 당연히 증시 개장과 함께 주가도 올랐다. 그런데 패널들은 무역합의 사실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주가 상승에 대한 설명은 해야 하니 기업실적이나 경기호조 등 잡담만 오고 갔다.

정부가 공식 발표하지 않는 내용을 국영방송사가 언급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다만 투자자들은 합의 타결을 알고 있었다. 중국 정부의 엄격한 인터넷 검열과는 다르게 돈만 있으면 가상사설망(VPN)을 통해 외신과 접할 수 있다. 정부도 이를 암묵적으로 허용해 VPN 사용자가 10%나 된다는 분석도 있다. 결국 이날 상하이종합지수는 1.78% 상승했다. 오후11시 중국 정부가 심야 기자회견에서 무역합의 타결을 발표하고 나서야 중국 패널들도 마음 놓고 대화하기 시작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서도 이런 어중간한 현상은 반복되고 있다. 중국 감염병 분야의 최고 권위자라는 중난산 중국공정원 원사는 중국 매체에서 거의 ‘선지자’ 대우를 받는데 이의 시발점은 지난 1월20일이다. 당시 그는 CCTV에 출연해 “코로나19의 사람 간 전염이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다만 이날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단호하게 억제하라”는 첫 지시를 내린 날이어서 결국 중 박사가 정부와 사전 합의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중 박사는 2월27일에는 “코로나19가 중국에서 가장 먼저 출현했지만 꼭 중국에서 발원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하며 발원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애매모호한 상황은 우한 봉쇄 해제 이후에도 진행형이다. 석 달 가까이 ‘감금’돼 있던 우한 주민이 겨우 해방을 맞았지만 중국 내 어느 지역도 환영하지 않는다. 베이징은 우한 거주자 전원에서 대해 진단 검사와 2주 격리를 의무화하고 있다. 우한이 외국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방역과 경제의 갈림길에 서 있다. 경제정상화를 위한 부양책은 제대로 먹혀들지 않고 있다. 방역을 명분으로 주민통제가 계속되기 때문이다. 중국 측 공식 집계에 따르면 해외 유입 환자 외에 최근 중국 내 자생적인 확진자는 거의 없다. 베이징에서도 지난달 24일 이후 3주째 신규 확진자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기업·기관이나 상업시설 등은 여전히 통제되고 아파트 입구에서는 경비원들이 체온계를 들이대며 출입증을 확인하고 있다. 애초에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지적이다. 바이러스와의 전쟁 승리라는 명분에 집착하다 보니 실제 환자가 있어도 숨긴다는 의심이 팽배하다. 베이징인들은 아직 마스크를 벗기 두려워한다.

중국에서는 한국이 코로나19 청정국이다. 베이징에는 한국인 확진자가 한 명도 없었고 한국에서 온 사람 중에서도 없다. 중국 전체에서 한국인 확진자는 단 세 명인데 모두 산둥성 거주자로 중국인 부인에게서 감염된 남편과 자녀 두 명이다. 기자가 사는 아파트단지에 2월 말 ‘마스크를 착용하십시오’라는 한글 플래카드가 걸렸는데 한 달도 안 돼 슬그머니 내려졌다. 중국인들도 이제 방역과 경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한국의 단호한 조치와 철저한 투명성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한국의 정책이 지속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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