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증유의 코로나19로 사회적 혼란이 극심하다.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이 공포를 키우는데.
△최근 재난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세계가 직면한 위험 가운데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가능성 1위, 치명성 1위 후보로 거론됐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가장 전형적인 팬데믹이 우리를 덮쳤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언노운(unknown·알지 못하는) 리스크’가 가장 두렵다. 무증상자들이 바이러스를 확산시키는데도 전파 메커니즘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백신 개발에도 상당한 시간과 투자가 필요하다. 내가 조심해도 누군가로부터 전염되면 치명상을 당하다 보니 고려해야 할 요소가 너무 많아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코로나19가 우리 사회의 취약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지적이 많다.
△정신병원·요양병원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하고 신천지 같은 비정상적인 종교단체에서 문제가 터졌다. 평상시에는 외부로 잘 나타나지 않고 외면해온 분야의 취약성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코로나19는 한국 사회 곳곳에 감옥처럼 산재한 조직이 많다는 사실을 보여준 셈이다. 연극에 비유한다면 무대 위 커튼을 열어젖혀 평소 접하지 못했던 적나라한 민낯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흔히 재난은 사회적 취약성 모델을 통해 설명하기도 한다. 같은 위험에 처한다 해도 사회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따라 피해를 줄일 수도, 키울 수도 있다.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사태가 우리 사회 전반에 새로운 변화와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낡은 사회·경제구조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정치 리더십이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권욱기자
-그래도 한국은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피해가 작지 않은가.
△우리도 초기에 시행착오를 많이 겪기는 했지만 뼈저린 학습효과 덕이 컸다. 메르스 당시에 드러났던 문제점을 개선했다는 사실이 결정적 차이를 불러왔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질병관리본부는 선진국과 달리 예산·인력 부족에 시달리는데다 외부로부터 비난이 집중되는 구조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코로나19 수습 과정에서 보여준 정부의 대처능력을 평가한다면.
△일각에서는 정부의 대응능력을 높게 평가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전문가들이 전권을 갖고 정책주도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우리는 전문가들이 기술적 수준의 보고서나 제출할 뿐 정책결정 권한을 갖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코로나19가 종식됐다고 얘기했다가 거둬들이는 등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다. 정책 입안자들이 전문가집단 위에 군림하며 정치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비단 방역 분야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전문가를 홀대한다는 얘기인가.
△대한민국 정도의 국가 수준이라면 전문성을 요구하는 분야가 곳곳에 있게 마련이다. 방역도 그렇거니와 풍부한 식견과 경험을 갖춘 전문가집단이 제 목소리를 내야 사회 발전도 가능하다. 원래 이념적으로 선명한 주장을 하는 정권일수록 이념을 앞세우는 집단과 전문가집단 사이에 충돌을 빚는다. 이념을 앞세우면 전문가 입장에서 잘못된 정책을 쓰게 되고 전문가의 의견을 받아들이면 보수적이고 과거회귀적이라는 비판을 받게 된다. 결국 못 견디는 쪽이 뛰쳐나올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사태가 우리 사회의 잠재력을 발견하는 계기였다는 견해도 있다.
△인천에서 드라이브스루 진료소를 만들어 대구에서 결실을 보고 새로운 마스크 사용법을 널리 전파하는 등 민간의 아이디어가 큰 도움이 됐다. 의료진은 대구로 달려가 자원봉사 활동을 벌였고, 마스크를 나눠 쓰고 성금을 내는 사람도 많았다. 재난이 가져온 독특한 위기의식이 사회에 잠재돼 있던 결속이나 공동체성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이다. 우리는 외환위기나 태안 유류오염 사고 당시 국난극복에 동참했던 잠재력을 갖고 있다. 적절한 명분이 주어지고 공동체의 위험이 느껴질 때면 한데 뭉치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국민을 분열시키지만 국민들은 이를 뛰어넘는 풍부한 연대의식을 갖추고 있다.
-이번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사회적 관계가 달라질 것으로 보이는데.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사회학자 입장에서는 잘못된 용어다. 물리적 거리라고 표현해야 맞다. 물리적 거리는 유지하되 사회적 거리는 줄일수록 좋다.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는 거대한 실험을 하고 있다. 끈끈했던 사회가 갑자기 그 끈끈함을 없애버리고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도록 하는 초유의 실험에 들어간 것이다. 사회적 친밀성에 대한 결핍증이 생기고 다양한 연결구조를 자랑했던 이들이 오히려 위험해지는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기존의 익숙했던 관계가 사회적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새로운 연결구조를 맺으려는 움직임도 활발해질 것이다.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사태가 우리 사회 전반에 새로운 변화와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낡은 사회·경제구조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정치 리더십이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권욱기자
-우리 산업구조도 어떤 형태로든 변화가 불가피한데.
△이번에 온라인 강의를 해보니 적응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교수들이 낯설어할 뿐 학생들은 금세 적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러다가는 대학이 모두 없어져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지금 모두를 등 떠밀어 강물에 빠뜨려놓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은 빠져나오라고 얘기하는 식의 급격한 환경변화에 직면해 있다. 재택근무, 온라인 교육, 원격의료가 활발해지면서 기존의 사회조직과 문화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산업계의 새로운 강자가 탄생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과거 포디즘(Fordism)이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대량생산 체제를 구축해 세계 자동차 시장을 제패했듯이 그런 변화를 예감하게 된다. 기술혁신과 산업구조 변화를 통해 글로벌 헤게모니가 재편되는 또 다른 갈림길에 들어섰다고 봐야 한다. 이번 사태를 잘 활용한다면 모든 분야가 한꺼번에 바뀌는 모멘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적응하기 어려운 이들이 나오겠지만 큰 방향으로 보면 앞으로 가야 할 길이다.
-이런 변화에 잘 대처하면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을 텐데.
△한국은 정보기술(IT) 인프라나 인터넷 보급, 스마트폰 활용도 면에서 세계 1위다. 우리는 이미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기술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이처럼 잘할 수 있는 분야가 많은데도 규제와 기득권에 가로막혀 있다. 원격의료만 해도 그렇다. 이제는 해상도 높은 의료장비를 통해 지구 반대편의 환자도 진료할 수 있다. ‘타다 금지법’도 마찬가지다. 문제가 있으면 그걸 풀어야 하는데 타다를 금지해 택시를 보호해주면 된다는 식의 발상은 위험하다. 굳이 타다가 없어도 풀어야 할 문제 덩어리 아닌가. 택시기사와 신규 사업자도 나아지고 고객인 국민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 받는 방안을 고민하지 않고 무조건 안 된다는 방향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이런 기술 변화를 수용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기술 변화를 수용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사회적 인식의 대전환이 절실하다. 과감한 사회혁신과 기득권 해체로 새로운 기회를 적극 활용하고 미래 먹거리를 창출해야 한다. 교육 분야의 경우 대졸자를 요구하는 일자리는 줄어드는데 생산직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고용과 교육 시스템, 산업정책이 따로 놀기 때문이다. 차제에 시대 변화에 맞춰 낡은 시스템을 빨리 업그레이드해야 4차 산업혁명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
-결국 기득권의 눈치를 살피는 정치 리더십이 큰 문제라고 생각되는데.
△오직 눈앞의 표에 집착해 선거에서 이길 궁리만 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내 임기 동안 욕을 먹더라도 나라를 위해 필요한 일을 하는 리더십, 지금 당장 우물을 파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독일 노동시장의 변화를 초래한 ‘하르츠 개혁’처럼 욕을 먹어도 혁신을 관철하겠다는 용기가 필요하다. 당장 박수를 받는 데 집착하지 말고 시스템 전반의 혁신을 선도해야 한다. 제대로 된 선진국에서는 친노조 정권이 들어서면 노동시장 개혁을 단행하고 우파가 집권하면 소득세·법인세 개혁에 나선다. 그런 측면에서 정파적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희생하는 경세가가 필요한 시대다.
-지금 같은 혼란기에 요구되는 지도자의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미래 비전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국민들이 같은 방향을 보도록 만드는 것이다. 당장은 갈등이 불가피하지만 미래를 향해 같은 이해관계를 공유하게 되면 출구가 보이게 마련이다. 나라의 장래를 내다보는 큰 그림을 그리면서 국민을 설득하고 숨어 있던 저력을 이끌어내야 한다. 공감과 신뢰의 가치를 앞세우고 국민의 마음을 한데 모은다면 지금의 위기를 한 단계 도약하는 기회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정상범 논설위원 ssang@sedaily.com
He is…
1961년 대전 출생으로 대전고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사회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사회학회 연구이사,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장과 사회과학정보센터소장, 미래기획위원회 민간위원 등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고등교육재단 이사,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한국사회과학자료원장을 맡고 있다. ‘경제의 사회학’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서 살겠습니까’ ‘한국 기업과 사회의 경쟁력’ ‘기업 시민의 길’ 등의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