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전경. /서울경제DB
행정청이 위탁사업자와의 계약을 갱신하면서 변경 조건을 합의하지 못했다면 이를 바탕으로 한 계약 통보는 위법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13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이성용 부장판사)는 A 의료법인이 강남구를 상대로 낸 요양병원 위·수탁기간 연장 통보 등 처분 취소청구 소송에서 원소 승소로 판결했다.
강남구는 2011년 세곡동에 행복요양병원을 설립한 뒤 공모를 거쳐 2014년부터 5년 계약으로 A 의료법인에 병원 운영을 위탁했다. 위탁 기간 만료가 다가오자 강남구는 A 의료법인에 ‘연간 시설운영비 약 8억원 납부, 위탁 기간 3년’ 등 새로운 조건을 내걸었다. 법인은 이를 받아들여 강남구는 위탁 기간 연장을 의결했다.
그러나 강남구는 감사 결과 의결에 문제가 있었다며 A 법인 측에 통보하지 않은 채 기간 연장 여부를 다시 심사했다. 강남구는 “구청이 병원을 직접 운영할 것이고, 직영 전환 전까지만 위탁 기간을 연장한다”는 결과를 법인 측에 알렸다.
이에 A 의료법인은 직영 전환 시 모든 병원 직원에 대해 고용을 승계하고 향후 다시 민간에 위탁할 경우 자신들에게 맡길 것을 조건으로 이를 수용했다. 하지만 강남구는 이 조건에 대해 명확한 의사를 밝히지 않은 채 직영 전환 등을 골자로 하는 위·수탁 기간 연장 등을 통보했다. 이에 A 의료법인은 이런 내용의 통보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취지의 소송을 냈다.
소송에서는 A 의료법인과 강남구 사이에 ‘직영 전환 합의가 있었는지’가 쟁점이 됐다. 강남구는 “원고 측과 직접 만난 자리에서 원고가 먼저 구청 직영 운영을 적극적으로 제안했다”며 양측의 합의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A 의료법인 측은 “다른 법인에 병원 운영이 위탁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건을 전제로 직영 전환을 제안했지만, 피고가 해당 조건을 수용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새 계약 통보를 했으므로 합의는 성립하지 않은 것”이라고 맞섰다.
법원은 A 의료법인 측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원고 측이 피고와 만난 자리에서 나눈 일부 대화만으로 쌍방이 직영 전환을 확정적으로 합의를 했다고 볼 수는 없다”며 “오히려 원고 의사는 원고가 제시한 조건을 피고가 수용하지 않는 한 직영 전환에 합의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보이는데, 피고가 그 조건을 수용했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또 충실한 심사가 이뤄지지 못해 첫 의결이 위법이라는 강남구 측 주장에 대해서도 “적정한 심사가 이뤄지도록 해야 할 권한과 책임은 피고에 있음에도 스스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이제 와 절차적 하자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희조기자 lov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