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MTC의 64단 낸드플래시 웨이퍼.
“오는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70%를 달성하겠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15년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중국제조 2025’ 계획을 공개하며 ‘반도체 자립’을 선언했다. 중국은 이를 위해 향후 10년간 1조위안(약170조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하고 5년이 흐른 2020년에도 ‘반도체 굴기’에 힘주고 있다. 중국이 최근 몇년간 인수합병을 시도한 반도체 업체는 낸드플래시 업체인 샌디스크를 비롯해 글로벌 3위 D램 제조업체 마이크론 등 다양하다. 또 웨스턴디지털에 대한 지분 투자 시도를 비롯해 2017년 도시바메모리 매각 당시에는 컨소시엄 형태로 인수를 시도한 바 있다.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이 같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시장 점유율 하락과 매출 감소를 우려하고 있다. 특히 중국 업체들은 자국 정부의 ‘묻지마 지원’에 더해 특허 무단 도용 및 인재 빼가기 등으로 덩치를 키운 것으로 전해져 업계의 근심이 커지고 있다.
15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YMTC는 최근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128단 낸드플래시인 ‘X2-6070’ 샘플을 공개했다. 지난해 64단 낸드플래시 제품 양산에 성공한 YMTC는 올해 말께 128단 제품 양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128단 제품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지난해 양산에 성공한 제품으로 YMTC가 올해 말께 관련 제품을 양산할 경우 한국 업체와의 기술 격차가 2년 이내로 좁혀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칭화유니그룹 산하의 YMTC는 보조금과 세제 혜택 등 중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칭화유니그룹은 칭화대가 지난 1988년 세운 칭화대 과학기술개발총공사가 전신으로 칭화홀딩스가 지분 51%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칭화유니그룹을 사실상 중국 정부 산하의 공기업으로 분류하고 있다.
칭화유니그룹은 최근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시장에도 기술력을 과시하며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중국 최대 반도체 업체로 손꼽히는 칭화유니그룹은 지난 2013년 시스템반도체 설계업체인 스프레드트럼과 RDA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를 동시에 인수하며 관련 기술을 확보한 바 있다. 칭화유니그룹의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자회사인 유니SOC는 TSMC를 통해 6나노급 5G 통신 모뎀 및 AP 등을 생산할 예정이다. AP 업계에서는 아직 이름조차 생소한 유니SOC가 퀄컴, 삼성전자, 애플, 화웨이 정도가 가능한 6나노급 AP를 설계한 것과 관련해 중국 정부의 지원이 뒷받침됐다는 의구심을 제기한다. 미국 제재로 AP 점유율 상승이 불가능해 진 하이실리콘(화웨이 자회사)이 AP 설계 능력 등을 유니SOC 측에 이전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칭화유니그룹의 낸드플래시 부문을 담당하는 YMTC 또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발원지인 중국 우한에 본사 및 공장이 자리해 반도체 기술 향상이 힘들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YMTC는 지난 몇 달간 이어진 우한 봉쇄 기간에도 낸드플래시 공장을 정상 가동하며 기술력을 끌어올렸다. ‘중국제조 2025’ 달성을 위해 중국 당국 측이 YMTC를 지원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한국 업체와 YMTC와의 기술 격차가 아직 2년 수준 정도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반도체 업체 관계자는 “YMTC가 공개했다는 샘플을 바탕으로 128단 낸드플래시의 기술력을 파악 중에 있으며 실제 양산에 성공할지 두고 볼 일”이라며 “삼성전자의 경우 128단 낸드플래시 적층 공간에 한번에 구멍을 뚫는 ‘싱글 스택’ 기술을 적용하고 있으며 SK하이닉스는 CTF와 PUC 등의 기술을 바탕으로 4D 낸드를 양산하고 있는 만큼 YMTC와의 기술 격차가 여전히 커 보인다”고 밝혔다.
YMTC의 중국 내 공장
문제는 중국 기업들의 노골적인 자국 반도체 기업 ‘밀어주기’ 행보와 특허 침해 등에 따른 한국 업체의 피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4분기 기준 글로벌 낸드플래시 시장의 35.5%를, SK하이닉스는 9.6%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반면 YMTC의 본국인 중국은 애플 스마트폰을 생산하는 폭스콘 등 주요 정보기술(IT) 기업의 공장 덕분에 글로벌 반도체 수요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중국 시장에서 38조405억원의 매출을,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전체 매출의 46% 수준인 12조5,702억원을 중국 시장에서 각각 벌어들였다. 특히 낸드플래시는 D램 대비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아 YMTC를 필두로 한 중국 업체들의 거센 추격이 예상된다. 마이크론이 128단 3D 낸드플래시 양산을 앞두고 있는데다 인텔이 업계 최초로 연내 144단 낸드플래시 양산을 공언해 이들 미국 업체의 추격도 부담이다.
삼성전자는 이 같은 YMTC의 추격에 특유의 ‘초격차’로 대응할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중국 시안 2공장 1단계 투자 출하 기념행사를 개최하며 90단 이상의 3차원 수직구조의 낸드플래시를 본격 양산 중이다. 삼성전자는 시안 2공장에 지난 2017년부터 70억달러를 투자했으며 향후 2단계로 80억달러를 추가 투자할 방침이다. 총 150억달러 규모의 투자가 완료될 경우 삼성전자 시안 2공장의 낸드플래시 생산량은 월 13만장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돼 보다 확실한 ‘규모의 경제’를 갖출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3년간 반도체 시설 투자 등에 연평균 13조원이 넘는 투자를 단행한 SK하이닉스 또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중국 업체의 추격을 뿌리친다는 방침이다.
일각에서는 최근 유동성 위기설이 불거지고 있는 칭화유니그룹이 YMTC 투자자 모집을 위해 128단 낸드플래시 샘플을 공개했다는 분석도 제기한다. 메모리 반도체 업계에서는 회로 집적 기술 외에 웨이퍼당 얼마만큼의 반도체를 양산해낼 수 있는지가 중요하지만 중국 업체들의 수율은 한국 업체 대비 크게 낮다. 칭화유니그룹이 D램 시장 진출까지 공언했다는 점에서 이 같은 낮은 원가 경쟁력하에서도 사업을 유지하려면 꾸준한 자금 확보가 필수다.
특히 중국 정부가 반도체에 향후 10년간 투자하기로 한 170조원 가량의 자금만으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따라 잡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삼성전자의 경우 최근 3년간 반도체 부문에만 73조원을, SK하이닉스는 같은 기간 40조원을 각각 투자했다. 이들 두 업체의 최근 3년간 반도체 부문 투자금액 합계가 113조원이라는 점에서 중국이 이들 두 업체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단순 계산하더라도 매년 34조원 이상의 투자가 필수인 셈이다. 칭화유니그룹을 비롯한 중국 반도체 기업이 추가적인 자금 확보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중국이 특허 도용이나 인력 빼가기, 자국 정부의 세제 지원 등을 바탕으로 한 ‘패스트 팔로잉’ 전략을 펼칠 것이란 분석도 제기한다. 중국 PC 제조업체들이 정밀도가 떨어지는 중국 기업의 D램이나 낸드플래시를 사용하며 중국 반도체 기업이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기 전까지 노골적인 지원책을 펼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19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SCM)이 훼손된데다 업계 수요까지 하락했지만 코로나19를 가장 빨리 극복한 중국이 되레 반도체 굴기에 힘을 주는 모습”이라며 “중국 정부의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에 대한 반독점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은데다 중국이 세계 최대 반도체 수요처라는 점에서 중국의 이 같은 부당한 정책에 대한 국내외 기업들의 대응이 쉽지않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일부 반도체 업체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의 특허 도용 문제에 강경 대응하고 특정 IT 관련 장비의 중국 유출을 금지하는 이른바 ‘중국 때리기’에 다시한번 나서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코로나19로 미국 내 중국관련 여론이 좋지 않은데다 미국 대선이 얼마남지 않은 만큼 조만간 트럼프 행정부가 조치를 취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