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EY한영 재무자문본부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은 세계의 모든 것을 바꾸고 있다. 글로벌 회계컨설팅법인 EY가 최근 발표한 ‘자본신뢰지수’에 따르면 전 세계 기업 최고위 임원진의 46%가 글로벌 경제전망을 부정적으로 내다봤다.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긍정적인 전망이 47%였는데 긍정과 부정이 자리를 바꾼 것이다. 부정적 전망의 골 역시 깊다. 글로벌 경영진의 73%는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전 세계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가벼운 타격만 남길 것이라는 낙관적인 관측은 27%에 불과했다.
코로나19의 창궐은 기업의 일하는 방식을 바닥부터 탈바꿈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지역사회 감염을 차단하기 위한 재택근무의 확대, 입국금지 등 사실상의 국경봉쇄와 같은 방역조치 등으로 기업은 기존의 일하는 방식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 일부 발 빠른 기업은 이번 사태를 변화의 계기로 삼고 있다. 절반 이상(52%)의 글로벌 경영진은 이미 글로벌 공급망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업무 자동화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는 경영진 역시 36%나 됐고, 디지털 전환을 더 빠르게 추진한다는 경영진도 31%나 됐다. 피할 수 없는 위기를 모멘텀으로 삼아 변화를 추진하는 것이다.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서는 코로나19 사태로 많은 딜이 무산되거나 연기됐다. 전 세계 경제 발전에 급제동이 걸리면서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기회로 보는 모습도 관측됐다.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된 지난 2월 말 이후 이뤄진 조사에서 글로벌 경영진의 61%는 향후 12개월간의 M&A 시장에 대해 ‘나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코로나19 창궐 이전의 조사 결과(58%)에 비해 조금이나마 시장전망을 더 밝게 보는 모습이 나타난 것이다. 향후 12개월간의 적극적인 M&A 활동 여부를 묻는 질문에서도 코로나19 확산 이전(58%)이나 이후(54%) 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코로나19로 인한 기회를 포착하려는 모습이 나타났다. 코로나19로 인한 M&A 전략 변화에 대한 질문에 경영진의 39%는 ‘(인수 대상) 기업 가치 하락을 관측한다’고 답했고, 38%는 ‘기업의 위기대응능력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고 답했다. 코로나19 창궐과 같은 전 세계적 위기상황을 통해 옥석을 가리고 우량 기업과 자산을 보다 싼 가격에 매수할 기회로 삼겠다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전 세계 경제에 많은 타격을 안겼다. 그러나 이 시기에 적극적인 M&A에 나선 기업은 고품질의 자산을 싼값에 매입할 수 있었다. 이렇게 매입한 자산을 바탕으로 시장 회복기에 더욱 큰 성장을 이뤄냈다. 지금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모든 기업에 코로나19에 따른 위기를 극복하고 생존하는 것이 최우선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위기 이후 경제상황이 좋아질 때를 준비하는 기업이 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위기상황이라고 움츠러들기만 할 필요는 없다. 지금 준비에 따라 앞으로의 성과는 두 배, 세 배로 커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