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의 성화로 63세 여성 A씨가 치매 조기검진을 받으러 왔다. A씨는 최근 건망증이 심해지기는 했지만 자신은 아무렇지 않은데 자녀들이 법석이라며 화를 냈다. 반면 자녀들은 어머니가 최근 약속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등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고, 약속이 있다고 설명하면 화를 내고, 말투·성격이 달라졌다고 했다. 검사 결과 A씨는 알츠하이머 치매 초기로 진단됐다.
최근 인구 고령화에 따라 치매가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알츠하이머 치매로 진료를 받은 환자는 2015년 약 31만6,000명에서 2017년 39만3,774명, 2019년 49만5,000여명으로 증가했다. 혈관성 치매와 신경퇴행성 치매 등을 포함하면 이 숫자는 더 늘어난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60세 이상 인구 1,132만여명 중 7%인 약 80만명이 치매 진단을 받았다. 여성이 61.5%(49만명)로 남성(38.5%)의 1.6배였다. 치매환자의 84%는 75세 이상이었다. 정부가 ‘치매 국가책임제’를 시행하며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지만 치매는 본인은 물론 가족에게 두려운 병이다.
치매는 뇌 기능이 손상되는 질환이다. 구조적이든 기능적이든 뇌 전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기능 손상이 진행된다. 뇌 인지기능의 일부에 이상이 있다면 아무리 심해도 치매로 진단하지 않는다.
뇌 인지기능은 △기억력 △주의집중력 △언어능력 △계산능력 △도구 이용능력 △일을 조리 있게 처리하는 능력 등이 있는데 각 기능을 뇌의 다른 영역에서 담당한다. 치매는 이런 기능에 상당한 수준의 문제가 생긴 경우다. 기억력에 문제가 생겼거나 언어능력 등이 떨어졌어도 일상생활에 문제가 되지 않으면 치매라고 진단하지 않는다.
대화할 때 자주 사용하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으면 건망증이지만, 엉뚱한 단어를 사용해 문장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 말을 하면 치매를 의심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나빠진다면 최종적으로 치매라고 진단한다. 노년기에는 여러 원인으로 잠시 동안 뇌 기능이 치매 수준까지 떨어진다. 정상적인 발달 후 지적능력의 저하를 초래하는 어떤 원인에 의해서도 치매가 발생하며 70가지 이상의 다양한 원인질환에 의해 치매가 된다. 이 중에는 치료시기를 놓치면 회복이 안 되고 치매로 남는 경우가 있다. 치매 조기감별 진단이 필요한 이유다. 치매를 제대로 진단하려면 6개월 정도 관찰이 필요하다.
세브란스병원 의료진이 치매의심 환자에 대해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세브란스병원
치매는 여러 인지기능이 나빠지는 것이지만 대체로 순서가 있다. 뇌의 가장 앞부분인 전두엽에 먼저 기능 이상이 오는 전두엽 치매나 혈관성 치매의 경우 성격이 바뀌고 우울증이나 언어장애가 먼저 나타나기도 한다. 치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알츠하이머 치매의 경우 기억력이 먼저 나빠진다.
치매 초기 단계에는 단순기억장애만 있을 수 있다. 따라서 단순기억장애와 치매 초기의 ‘가벼운(경도) 기억장애’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인지장애 없이 기억력장애만 있다면 경도인지장애라고 하는데 1년에 10명 중 1명 정도 치매로 발전한다. 5년이 지나면 50% 정도가 치매로 진행한다. 기억장애가 있다면 5년 내 치매로 진행될 확률이 반반인 셈이다.
치매로 발전할지를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 없다. 치매를 예방하려면 인지건강에 좋은 생활습관을 갖고 금연·금주, 규칙적 운동, 균형 잡힌 영양섭취를 해야 하며 고혈압·당뇨 등의 치료를 잘 받아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삶을 대하는 자세다. 미국 시카고 러시대 연구팀에 따르면 기존에 알려진 운동·식이·체중조절 등 신체관리를 넘어서 삶에 대한 동기(motivation for life)가 높은 사람들이 노화에 의한 인지기능의 감퇴 속도가 느렸고 경도인지장애에서 치매로 진행되는 정도도 훨씬 낮았다. 삶에 대한 동기는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의식이다.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살아 있는 것이 누구에게 중요한지, 내 인생이 세상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등을 말한다. 삶에 집착하며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과는 다르다. /김어수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