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6년 12월19일 국민회의와 자민련 합동모임에서 당시 2당이었던 국민회의의 김대중 총재와 3당이었던 자민련의 김종필 총재가 야권공조를 과시하며 ‘고향의 봄’을 함께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21대 총선에서 지상파 3사 출구조사 분석 결과 더불어민주당과 비례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이 단독 과반을 달성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패할 것으로 관측된 미래통합당 역시 110~130석 안팎의 의석을 확보해 지난 20대 총선 수준(122석)은 충분히 유지할 것이란 예상이다. 예전 총선에서는 김종필 전 총재가 이끌던 자유민주연합,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 등 제3당이 수십 석의 의석을 점유하며 제1당의 과반 차지를 견제했지만 이제는 양당 체제가 완전히 확고해진 모양새다. 이 같은 정치 지형이 이어질 경우 앞으로는 양당 중 누가 승리하더라도 손쉽게 단독 과반을 휩쓰는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15일 오후 6시까지 진행된 총선 투표 마감 직후 KBS는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이 155~178석,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이 107~130석을 각각 확보할 것으로 예상했다. MBC는 민주당과 시민당이 153~170석, 통합당과 한국당은 116~133석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했고 SBS는 민주당과 시민당 154~177석, 통합당과 한국당 107~131석을 얻을 것으로 분석했다. 민주당의 경우 예측 범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의석을 얻어도 단독 과반을 얻게 된다. 154석만 얻어도 역대 최다 의석 기록을 세우게 된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 /연합뉴스
민주당의 이 같은 독주는 제1야당인 통합당의 부진 효과도 있지만 무엇보다 제3당과 소수정당의 몰락에 따른 반사효과가 더 크다는 분석이다. 통합당의 경우 민주당보다는 부진할 것으로 예측됐지만 의석 총수는 지난 20대 국회 때와 엇비슷할 것으로 관측됐다. 반면 정의당은 4~8석, 국민의당은 3~5석, 민생당은 0~4석, 열린민주당은 0~3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예상대로라면 최악의 경우 원내 교섭단체 구성(20석)은 커녕 소수라도 의석을 얻는 정당조차 정의당과 국민의당만 남게 된다는 얘기다.
이는 과거 총선 결과와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부분이다. 민주화 이후 역대 총선에서 제3당이 두자릿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여소야대가 극명했던 1988년 13대 총선은 물론 1992년 14대 총선에서도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이끌던 통일국민당이 31석을 얻으며 돌풍을 일으켰다. 1996년 15대 총선은 제3당이 가장 강력한 위력을 떨친 선거다. 김종필 총재의 자민련이 무려 50석을 석권한 것이다. 자민련은 2000년 총선에서 위세가 줄었지만 그래도 17석을 얻어 명맥은 유지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연합뉴스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열린우리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태에 따른 반사효과로 152석의 과반을 차지했지만 당시에도 민주노동당이 처음으로 10석을 얻으며 약진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거꾸로 한나라당이 153석을 얻었으나 충청 지역을 기반으로 한 자유선진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친위 부대였던 친박연대가 각각 18석, 14석을 얻으며 보수 세력 내 견제 역할을 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새누리당이 152석을 얻는 보수 강세 속에서도 통합진보당이 13석을 얻었고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이 호남을 기반으로 38석을 얻으며 선거 판도를 흔들었다.
지난해 11월 서울 서초동에서 열린 검찰개혁 촉구 집회. ‘사랑해요 문재인’ 등의 문구가 보인다. /연합뉴스
지난해10월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 촉구 집회’. ‘Moon Out’ 등의 문구가 보인다. /연합뉴스
그러다 지난 4년 간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부터 시작해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 의혹,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드루킹’ 여론조작 의혹,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윤석열 검찰총장과 청와대 관련 수사, 소득주도성장 효과, 부동산 가격 폭등, ‘미투’ 운동, 대북정책,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민심이 극명하게 양분되면서 제3당이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소수 정당들이 4년 간 독자적인 가치를 내걸지 못하고 이합집산한 문제도 있다. 정의당은 문재인 정부 아래에서 민주당과 차별화하지 못했고 민생당은 호남 지역에만 매달리다 반등하지 못했다. 안철수 대표가 귀국 후 급하게 재창당한 국민의당의 경우는 아예 지역구 후보도 내지 못했다.
지난해 다당제를 강화한다는 목적으로 도입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역시 민주당과 한국당이 앞다퉈 비례 위성정당을 만들면서 역효과를 냈다는 평가다. 현 추세대로 계속 선거가 치러질 경우 앞으로는 ‘선거 승리=단독 과반’의 공식이 늘 성립할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