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 당진제철소./사진제공=현대제철
“돌발변수인 코로나19로 가뜩이나 경쟁력이 떨어지는데 온실가스 배출권 부담까지 늘어 감당이 안 됩니다.”철강 기업 B사의 한 고위임원이 한 얘기다. 철강 업계가 수익성 악화로 비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수요 위축, 원재료 가격 불안, 글로벌 무역전쟁 등 대내외 악재가 이어지는데다 온실가스 배출권 문제가 비용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출권 제도는 온실가스를 많이 내보내는 기업이 정해진 연간 배출 가능한 양을 초과하면 돈을 주고 배출권을 사서 차이를 메우는 것이 핵심이다. 사업 특성상 온실가스를 많이 내보내는 철강 업계는 울며 겨자 먹기로 많은 돈을 내고 배출권을 사오거나 생산량을 줄일 수밖에 없다. 철강 업계는 다른 나라보다 훨씬 강력한 온실가스 규제로 철강 산업의 경쟁력이 급격하게 악화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온실가스 배출권의 1톤당 가격은 지난해 4월 2만7,500원에서 1년 만에 47%나 오른 4만500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 2018년(2만3,200원)보다는 약 74%나 올랐다. 거래가격이 급등하는 것은 규제 강화를 앞두고 기업들이 배출권을 앞다퉈 사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2021~2025년 적용되는 제3차 배출권 거래제에 따르면 기업들이 의무적으로 감축하거나 돈을 주고 사들여야 하는 탄소배출권(유상할당량) 규모는 전체의 3% 수준에서 10%로 늘어난다.
철강 업계는 배출권 제도 강화가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비용 부담까지 떠안기고 있다고 토로한다. 현대제철(004020)의 경우 지난해 약 1,100억원을 배출부채로 쌓아놨다. 배출권 시가가 급등한 점을 고려하면 올해 현대제철은 지난해보다 2배 많은 돈을 배출권에 써야 한다. 지난해까지 초과배출이 미미해 비용 부담이 없던 동국제강(001230)도 올해부터는 무상할당량 축소로 돈을 들여 배출권을 사야 하는 상황이다. 철강 업계의 한 관계자는 “배출권 관련 비용은 생산원가에 고스란히 반영될 수밖에 없다”며 “코로나19로 보릿고개를 넘고 있는 상황에서는 생산량을 줄이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환경부 주도의 규제정책으로 시행되는 배출권 거래제에 강한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시장 기능’을 강화해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는 목표에도 불구하고 규제에 초점이 맞춰져 운영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시장 기능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경제·산업 부문 전문부처인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 간 업무협조가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발전사에 비해 감축 부담이 산업계에만 쏠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전력이 발전사 매출권 구매 비용의 약 80%를 보전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발전사는 배출량을 줄이기보다는 배출권을 미리 확보하는 전략을 펴며 배출권 가격도 올리고 있다.
산업계는 실질적으로 감축이 어려운 업종에 대해서는 충분한 배출권 확보가 가능하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호소한다. 철강 업계는 “기술적 또는 경제적 감축 부담이 큰 경우 유상할당 수입을 통한 지원이 필요하다”며 “감축목표를 기업들에 전가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유럽연합(EU)처럼 배출권 거래제에 따른 발전사 감축 부담이 전력요금으로 전가될 경우 전력 집약산업(철강·석유화학)에 대한 전력요금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기업이 중국과 일본 등 온실가스 비규제국 업체 대비 역차별을 받지 않도록 국제경쟁력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위기가 장기화하면 유상할당 비율을 내려 잡는 등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한동희기자 dwise@sedaily.com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고로 3공장 근로자가 작업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