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컬처] "우리 안에 잠든 '감정의 온도' 일깨워야 좋은 콘텐츠죠"

■ [비하인드 더 드라마] 유철용 스토리티비 대표
SBS 드라마 '올인' 연출하면서
"희망 생겨" 팬 손편지에 책임감
김수현 복귀작으로 제작도 도전
中합작사 추진…수출에도 힘 써
음악가 '밥 말리' 친구 이야기로
영화제작 오랜 꿈도 이뤄나갈것

유철용 스토리티비 대표. /사진제공=유철용

SBS 드라마 ‘올인’(2003)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인생 드라마’로 꼽힌다. 카지노의 세계에서 주인공 김인하(이병헌 분)가 겪는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를 그린 이 드라마는 탄탄한 스토리 전개와 미국 라스베이거스 현지 촬영 등 대규모 스케일을 자랑하며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최고 시청률은 무려 47.7%에 달했다.

‘올인’을 연출한 유철용 당시 PD는 이후에도 ‘폭풍속으로’(2004), ‘슬픈연가’(2005), ‘태양을 삼켜라’(2009) 등 굵직한 드라마를 꾸준히 선보여 오다가 지난 2018년 드라마 제작사 대표로 변신했다. 현재 그는 스토리티비 대표로서 연출과 회사 운영이라는 전혀 다른 두 영역에서 성공 스토리를 써 내려가고 있다. 2010년 설립된 스토리티비는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 KBS ‘저글러스’ 등을 제작한 회사다.

드라마 제작 뒤편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비하인드 더 드라마’의 열 한 번째 주인공인 유 대표를 최근 경기도 고양시 빛마루방송지원센터에 위치한 스토리티비 사무실에서 만났다. 제작사 대표와 감독을 모두 경험하고 있는 유 대표는 “연출할 때는 몰랐던 제작자의 입장을 피부로 온전히 느끼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유철용 스토리티비 대표. /사진제공=유철용

그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 제작사로도 유명한 ‘에이스토리’의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이상백 에이스토리 대표, ‘올인’ 최완규 작가와 함께 ‘에이스토리’의 기틀을 다졌다. 하지만 당시에는 제작사 운영보다는 연출 업무를 맡았던 만큼 제작자로 본격 변신한 것은 스토리티비 대표를 맡고 나서부터다.

“어떻게 보면 연출만 할 때가 마음은 편했죠.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오로지 촬영에만 몰두했으니까요. 제작자도 좋은 작품을 만들자는 생각은 연출자와 같은데, 손실을 보면서 계속 제작을 해나갈 수는 없으니 미묘한 입장 차이가 있습니다.”


입장을 다르지만, 제작자로서나 연출자로서나 ‘좋은 드라마’에 대한 그의 철학은 확고하다. 그는 “드라마 ‘올인’을 사랑해주신 많은 분들 중 한 일본 팬은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던 삶이었는데 드라마를 보며 다시 살 희망이 생겼다’며 손편지를 보내주기도 했다”며 “그 팬은 이후에도 제가 만든 모든 작품을 찾아보고 피드백을 주셨는데, 감사하면서도 책임감도 많이 느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좋은 드라마란 장르를 떠나서 사람 안에 잠들어있던 정서를 일깨워주고, 어떤 형태로든지 살아가는 에너지를 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유 대표는 배우 김수현이 출연할 예정인 tvN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제작 준비로 한창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올해 2~3개의 작품을 더 제작하는 데 이어 내년에는 본인이 직접 연출하는 작품도 선보일 예정이다.

유철용 스토리티비 대표. /사진제공=유철용

스토리티비는 최근 중국 측과 합작사 설립 계약을 맺고 중국 시장에서의 입지를 넓히기 위한 채비를 한 상태다. 지난 1월 중국 정부 산하의 영상 미디어 제작사인 중광국제미디어와 스토리티비는 ‘한중 문화산업 프로젝트 합자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중국 내 합작법인 설립을 통해 스토리티비는 드라마·영화·공연 등 콘텐츠의 중국 수출에 보다 힘을 실을 수 있게 됐다. 중광국제미디어와 다양한 협업도 진행할 계획이다. 유 대표는 “한국 독립제작사 중 중국 측과 합작사를 설립하는 것은 아마 처음일 것”이라며 “이를 계기로 중국의 공신력 있는 다른 영화·방송 제작사에서도 협업을 제안해오고 있다”고 밝혔다.

유철용 스토리티비 대표. /사진제공=유철용

원래 영화감독을 꿈꾸던 유 대표는 스웨덴 스톡홀름 대학교에서 영화학을 전공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스웨덴어과에 입학해 외무고시를 준비하기도 했지만, 영화에 대한 목마름을 참지 못하고 1년 반 동안 몰래 유학준비를 한 끝에 영화 공부를 위해 스웨덴으로 떠났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뒤에는 충무로에서 2년 정도 조감독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사람과 영화업계에 대한 실망 때문에 영화판을 떠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1992년 SBS에 특채로 들어가게 된 유 대표는 “내가 원하던 영화는 아니지만, 결국은 영화든 드라마든 똑같은 영상 매체라는 생각으로 일을 시작했고, 정말 열심히 일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연출로서 생각했던 ‘감정의 온도’가 느껴질 때까지 촬영하는 집요함이 있었다”며 “내가 수긍이 가지 않거나 감동이 없으면 ‘오케이’를 잘 하지 않는 스타일”이라고 밝혔다.

지금 그는 오랜 꿈이었던 영화 작업도 준비 중이다. 유 대표는 “자메이카 음악가인 밥 말리 친구인 실존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화할 예정”이라며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감독인 스톡홀름 대학교 동기와 함께 몇 년 간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영화에서 드라마로, 연출자에서 제작사 대표로. 굵직굵직한 선택을 하며 변신을 이어온 그다. 스스로의 선택에 후회한 적은 없을까. 유 대표는 “선택하기까지는 고민하느라 많이 힘들지만, 선택하고 난 후에 후회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애들한테도 공부하라고 하지 않는다. 본인 인생이고 선택은 자신이 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뭔지 고민하고 최선을 다하라는 게 내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해도 힘든 순간이 많이 오는데,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할 때 그걸 헤쳐나갈 수 있을까 싶다”는 것이 그 이유다.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그는 제작사 대표로서, 또 연출자로서의 두 가지 목표를 답해 왔다. “제작자로서는 좋은 콘텐츠들 통해 사람들의 감성을 일깨워주고 어떤 형태로든지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작품들을 많이 만들었으면 합니다. 연출자로서의 바램은 항상 그래 왔듯이 좋은 스텝들과 연기자들과 같이 호흡을 잘 맞춰서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이죠.”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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