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론직설] “언택트 일상화로 4차혁명 체험…생명과학 강국이 살 길”

[윤종록 한양대 특훈교수]
코로나 계기로 온라인 수업·쇼핑 등 비대면 산업시대로
방역 통해 국제적 위상 높아져…도약 기회로 적극 활용
중화학→정보통신→생명과학으로 산업 패러다임 전환
포용의 리더십·융통성 발휘해 규제완화 공감대 형성을

윤종록 한양대 특훈교수가 16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생명과학 대국을 만들자”고 역설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와중에 치러진 4·15총선에서 보수가 위축되고 진보가 득세했다. 전통적으로 진보는 혁신을 외친다. 하지만 ‘혁신경제’라는 청사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아직 3차 산업혁명 성공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바이러스가 세상을 휩쓸고 고령화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이제는 의료와 정보통신기술(ICT), 인공지능(AI)을 융합한 ‘생명과학·생명공학의 나라’를 만드는 게 새 과제로 떠올랐다. 이 분야는 우리의 주력인 ICT 시장보다 2배나 클 정도로 잠재력이 막대하다. 미래창조과학부 2차관을 지낸 윤종록(63·사진) 한양대 특훈교수는 16일 서울 행당동 한양대 연구실에서 서울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과거 중화학공업 시대에서 정보통신 시대를 거쳐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자연스레 생명과학의 시대가 열렸다”며 생명과학·생명공학 입국(立國)을 힘줘 말했다. 그는 미국의 혁신기업가인 피터 틸의 ‘제로 투 원(zero to one)’을 거론하면서 상상을 혁신으로 만드는 ‘소프트파워’를 강조했다.

-4·15총선이 이른바 ‘코로나19 총선’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어떻게 보는가.

△코로나19 사태 전에는 사람들과 국가들이 이념·지역·인종 등의 굴레 안에서 싸우고 역사가 이뤄졌다. 하지만 하찮은 미물에도 허둥지둥하는 상황에서 그런 대립구도를 탈피해 공동의 적에 대처하고 번영을 이뤄야 한다. 정치·경제·교육 등 국가의 모든 분야에서 포용성과 융통성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생명과학의 시대가 분명히 왔다는 것이다. 1973년 중화학 입국 선언을 하며 압축적으로 1·2차 산업혁명에 도전했고 1983년에는 정보산업 입국을 표방하며 3차 산업을 따라잡는 모멘텀을 잡았다. 이번 사태는 생명과학으로 먹고살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지난 30년 동안 엘리트들이 의대와 약대에 입학해 그중 97%가량이 돈을 벌겠다며 의사·약사의 길을 걸었다. 단 3%만이 의과학·약학을 했다. 의료서비스는 세계에서 가장 앞서는데 의과학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하지만 우리가 생명과학을 일으킬 기본 저력을 지니고 있어 의과학 영역을 3%에서 30%까지 끌어올리면 의료산업의 경쟁력도 산술적으로 10배가량 올라갈 것이다.

-그러면 의료·바이오 시장에서 어마어마한 먹거리를 만들 수 있겠다.

△전 세계 ICT 산업의 시장 규모는 4조달러(약 4,800조원)선인데 우리나라는 그중에 8%를 차지한다. 이 분야에서 무역흑자의 90%가 나온다. 의료서비스와 의료 산업의 시장 규모는 ICT의 2배에 달하는데 우리 비중은 0.8%에 불과하다. ICT 산업에서는 중국이 엄청나게 성장해 우리 비중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를 메워주고 도약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생명과학 산업이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우리나라가 생명공학과 ICT를 결합, 대응해 해외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데.

△진단키트나 방역 매뉴얼 분야에서는 ICT의 강점을 잘 살려 재빠르게 대처했다. 하지만 ICT 인프라를 잘 만들었어도 콘텐츠나 솔루션이 약해 인터넷영상서비스(OTT) 분야 등에서는 외국 기업에 좋은 일 시키고 있다. 생명과학 분야에서도 일부 기업들은 주가 부양에 골몰하고 있는데 본질적인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높아진 국제위상에 맞춰 기회를 잘 살리지 않으면 다시 추락한다.

-생명과학 산업을 키울 복안이 있다면.

△의사·약사의 기존 정원은 그대로 두되 이스라엘 테크니온공대처럼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과학기술특성화대에 의대·약대를 만들어 의과학·약학을 전공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현재 정원의 30% 정도를 의과학 분야 등에 할당해주면 큰 혁신이 일어날 것이다. 임상의도 참여시켜 의과학 데이터를 다루게 하면 상당한 시너지 효과가 예상된다. 이스라엘이 미국에 육박할 정도로 생명과학을 주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울러 ICT 강국에 기여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3배 정도 규모의 생명과학연구소를 육성해야 한다.


-생명과학과 정보기술(IT)이 결합해야 시너지 효과가 생긴다는 말인데.

△이스라엘을 자주 방문했는데, 10년 전에는 IT 벤처 창업이 많았지만 요즘에는 생명과학이 대세다. AI나 이미지프로세싱(영상처리) 등 IT 전문가가 의과학자에게 공동 창업을 권유하는 경우가 많다. 의과학자가 창업하려면 충분한 ICT 역량을 갖춰야 한다.

-생명과학연구소를 어떻게 키우자는 뜻인가.

△한국생명과학연구원의 예산과 인력을 대폭 확대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여의치 않으면 25개 과학기술 출연연구소의 생명과학연구팀을 융합해야 한다. 여러 출연연구소와 외부 연구기관이 모인 한국화학연구원의 신종바이러스융합연구단을 예로 들 수 있다. 울타리를 높이 쌓고 ‘내 것, 네 것’ 따져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가 벤치마킹을 검토할 수 있는 모델이 있다면.

△미국 실리콘밸리의 스탠퍼드대에는 ‘바이오엑스(Bio-X)’가 있다. 제임스 클라크 교수가 벤처기업을 통해 벌어들인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로 2003년 첨단 연구소들을 갖춘 ‘클라크센터’를 설립했다. 의대와 공대 등 다양한 분야를 엮어 식품안전·약학 등 융합연구를 통해 시너지를 창출한다. 또 생명과학에서 중요한 분야가 식품 산업이다. 땅이 좁은 네덜란드가 바헤닝언 지역에 델몬트·네슬레 등 세계 150대 식품기업 연구소의 대부분을 유치하며 식품 산업과 농산물 수출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도 진흙 함량이 가장 많아 유기물 정화 능력이 세계 최고인 갯벌을 잘 활용해 수산물 가치를 높이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동시에 소프트파워도 중요하지 않나.

△소프트파워는 상상력을 혁신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본다. 1·2·3차 산업혁명에서는 원료를 조금 넣어 짧은 시간에 많은 제품을 만드는 방안을 고민했다. 피터 틸의 ‘제로 투 원’에 비유하면 우리는 원료를 넣어 물건을 만드는 X축에서 수평적 확장은 잘해왔지만 제로(0)에서 원(1)을 창조하는 Y축의 수직적 혁신은 부족했다.

-소프트파워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과학기술, 소프트웨어 등 ICT 기술, 상상력이다. 세계 시가총액 1~20위 기업 중 원료를 넣어 제품을 만드는 하드파워 기업은 존슨앤드존슨밖에 없다.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조차 바뀌었는데 우리나라의 1~10위 기업들은 네이버를 제외하면 모두 X축에서 경쟁한다. 코로나19 해법이나 생명과학 입국, 4차 산업혁명은 Y축에서 나온다.


-신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경직된 규제도 말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렇다. 기존 틀과 제도로는 안 된다. 도로와 신호체계가 좋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자동차도 무용지물이다. 지난 정부에서 창조경제 추진에 앞장섰다가 소위 ‘최순실 사태’로 폄하 받았지만, X축 경제를 Y축 경제로 바꿔보자는 취지였다.

-‘창조경제’라는 말은 어떻게 나온 것인가. .

△이스라엘을 보며 우리가 창업국가가 돼야 한다고 확신해 대선 캠프에서 ‘창업경제’라고 제안했다. 그런데 창업을 굉장히 강조했던 김대중 정부를 답습하고 연상시킨다는 의견이 제기돼 ‘창조경제’가 됐다. 사실 현 정부의 ‘혁신경제’와 유사한 취지다. 현 정부에서 창조경제를 지웠어도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이름은 그대로 둬 다행이다.

-무엇보다 교육이 바뀌어야 하는데.

△두더지 게임처럼 튀어나오면 망치로 때리는 획일화된 교육은 안 된다. 암기에서 토론으로 바꿔 상상을 혁신으로 만들게 해야 한다. 남이 만들어놓은 규칙에 맞춰 빨리 답을 찾는 교육으로는 안 된다. 책을 많이 읽으면 상상력이 자극돼 소프트파워를 키울 수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교육의 80%가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교환하도록 질문과 토론으로 이뤄져 있다.

-정치권과 정부의 갈등 조정 리더십이 필요할 것 같다.

△원격의료만 해도 미국·중국·일본에서 모두 허용하는데 우리만 금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개인정보에 관해 각자의 선택을 존중했으면 한다. 의사협회 등이 오진이나 부작용을 우려해 원격의료를 반대하는데 당뇨 등 4대 만성질환자와 오지·낙도, 전방부대, 원양어선 등에서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일부 대학병원이 원격의료를 한시적으로 시행하고 있지만 이후 흐지부지될까 두렵다. 온라인 교육, 화상 회의, 온라인 쇼핑 등 ‘언택트(비대면) 산업’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국민들도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자연스레 느끼기 시작했다. 막연히 두려워하지 말고 규제 완화에 관한 대승적 공감대를 이뤄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정책 대안을 제시한다면.

△1·2·3차 산업 중 경쟁력이 떨어지는 곳을 다 살릴 수는 없다. 사회안전망을 본격 가동하되 경쟁력이 없는 분야에 투입되는 돈의 10%만 4차 산업혁명에 쓰면 미국·중국·이스라엘보다 앞서 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 교육에서 새로운 동기를 부여하고, 금융시장도 융자 위주에서 투자 위주로 생태계를 바꿔야 한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He is..

1957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나 한국항공대를 졸업하고 연세대 산업대학원에서 전자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기술고시에 합격한 뒤 KT에서 30여년 동안 근무하며 통신망 현대화 계획에 깊이 참여했고, 연구개발(R&D)부문장과 신성장사업부문장 등을 역임했다. 이스라엘의 혁신경제에 주목해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 입안에 참여했고 미래창조과학부 2차관으로 발탁됐다. 이스라엘의 고(故) 시몬 페레스 전 대통령이나 에후드 올메르트 전 총리 등과 격의 없이 교류하며 ‘후츠파로 일어서라’ 등의 책을 썼다. 생명과학 입국을 적극 주장하며 유대인의 도전정신인 ‘후츠파’ 아카데미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