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에 버금가는 국제통화 수준의 단일 디지털화폐 ‘리브라’를 발행하려던 페이스북이 미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반발에 부딪혀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독자적 단일 디지털화폐를 발행한다는 계획을 포기하고 각국 화폐에 연동된 여러 종류의 디지털화폐를 발행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틀었다.
페이스북이 주도해 스위스에 설립한 민간 디지털화폐 발행기구인 ‘리브라협회’는 16일(현지시간) ‘리브라 개발자들:앞으로의 길’ 제하의 자료를 통해 “단일 스테이블코인(single-currency stablecoin)에 더해 복수 통화 코인(multi-currency coin)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이번 발표는 리브라를 국가별로, 여러 종류로 발행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협회는 “전 세계의 규제당국들, 중앙은행들, 그리고 금융기관들과 협력해 리브라 지급결제망(libra network)에서 쓸 수 있는 단일 통화 스테이블코인의 수를 점진적으로 확대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 미국달러 기반 리브라 코인, 유로화 기반 리브라 코인 등을 개발 중이라고 소개했다. 이 방침대로라면 향후 원화·위안화·엔화 등을 기반으로 한국·중국·일본별 법정화폐에 연동된 리브라 개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리브라는 페이스북이 자회사 칼리브라를 통해 추진해온 블록체인 기술 기반 디지털화폐의 명칭이다. 리브라는 화폐가치 변동성을 안정시키기 위해 주요 기축통화 표시 채권과 같은 안전자산을 일종의 자본금(지불준비금)으로 삼아 발행되는 ‘스테이블코인’ 방식으로 추진돼왔다. 하지만 이번에 복수 통화 코인으로 전략이 변화된 것이다. 이에 대해 국내의 한 대형 금융기관 임원은 “달러·유로화 등과 대등한 수준의 독자적인 민간 발행 국제통화로 추진되던 리브라 계획이 백지화된 셈”이라며 “기존 통화에 연동된 지급결제 수단 수준의 민간 ‘사이버머니’나 ‘금융투자자산’ 정도로 위상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리브라는 원래 전 세계 어디서든 복잡한 환전 절차와 은행 중개수수료 없이 단일한 화폐가치를 지닌 디지털화폐로, 간편전자결제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 발표대로라면 국제 단일 통화로서의 간편결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협회가 이런 결정을 한 것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등 주요 기축통화국 금융통화 정책당국들의 규제에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리브라협회는 기존의 통화 체제와 경쟁하기보다는 순응하며 보조적인 전자지불결제 수단으로 리브라 계획을 일단 축소한 것으로 보인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