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아무도 하지 못한 말] 시대를 살아가는 시인의 못다한 고백

■최영미 지음, 해냄 펴냄


“이미 존재하는 언어로,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표현하려는 노력이 시였다”는 한때의 나직한 읊조림이 “저는 싸우려고 시를 쓴 게 아닙니다. 알리려고 썼습니다” 라고 울려 퍼질 때는 흥분으로 떨리는 일종의 외침이 됐다. 시인의 목소리는 “미투는 남성과 여성의 싸움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싸움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겼지만, 남자와 여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그 날을 위해 더 전진해야 합니다”로 이어졌다.


문제적 시 ‘괴물’로 문단 내 성폭력을 정조준하면서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시인 최영미에게는 투사의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먼저 꺼냈다는 이유로 법정투쟁까지 겪어야 했던 그가 9년 만에 낸 산문집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은 그간의 매체 기고글과 SNS에 올린 짤막한 글들의 문장을 엮어낸 책이다. “전쟁을 시작하는 건 이성일 수 있지만, 전쟁을 지속시키는 건 광기”라는 저자의 소설 ‘흉터와 무늬’를 인용해 “트럼프에게 해주고픈 말”을 얘기하는가 하면 솔직한 자기 고백의 ‘후회’부터 시인으로의 삶과 여성 문인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깊은 고뇌를 드러내기도 한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에 대한 기억과 방황, 촛불시위를 향한 응원, 시 ‘괴물’ 이후 미투(Me Too) 운동의 중심에 서게 된 시인의 고민이 책의 각 장(章)을 이룬다. 1만5,800원.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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