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대동면 소재 화환용 거베라 비닐하우스에 꽃들이 시들어 있다. 총 면적 1,000평 되는 대형 하우스지만 꽃이 져 초록색 잎만 두드러진다. /박호현기자
“작년까지만 해도 결혼이나 기업행사 등 5월 대목을 준비하기 위해 4월 중하순부터 (출하 등) 작업을 해야 하는데, 보는 것처럼 전부가 (집에서) 쉬고 있습니다.”
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 국내 최대 화훼농가 단지에서 18일 만난 김윤식 김해대동농협 이사는 한숨부터 쉬었다. 그는 “작년 이맘때만 해도 외국인 10여명을 사서 밤 12시까지 작업을 했다”며 “그놈의 코로나 때문에 한해 농사를 다 망치게 됐다”고 탄식했다.
대동면 화훼단지는 국내 최대라는 수식어에 어울리지 않게 정적만이 돌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2~3월 졸업·입학 특수를 전부 날려 버린데 이어 결혼과 기업 행사 등이 몰려 있는 5월 특수를 눈앞에 둔 4월 중순인데도 화훼 비닐하우스 안팎에는 인적이 뜸했다. 꽃을 주문하러 오는 사람도,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도 보이지 않았다. 코로나19가 국내 최대의 화훼단지를 휩쓸고 있는 것이다.
꽃을 키우는 비닐하우스 안은 더 처참했다. 3,300㎡(약 1,000평) 크기의 비닐하우스 안에는 화환용 ‘거베라’가 자라고 있었지만, 꽃인지 풀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였다. 거베라는 빨강과 노랑, 분홍의 꽃들이 탐스럽게 맺혀 있어야 하지만 판로가 막히자 그대로 방치돼 꽃은 시들고 초록의 잎만 무성했다. 김 이사는 “팔 데가 없어 그냥 방치해 둬서 저렇게 됐다”며 차마 못보겠다는 듯이 고개를 휙 돌렸다.
이곳 거베라 농장은 지난 해 평당 7~10만원의 소득을 올렸다고 한다. 한 해 매출은 1억원으로 난방비와 비료 등의 제반비용 60%를 빼고도 순소득이 4,000만원에 달했다. 하지만 출하를 못해 수입은 “빵원(0원)”이다. 결혼식이나 행사용 화환에 주로 쓰이고 거베라는 꽃을 투명 캡으로 씌우고 철사로 묶어 줘야 하는 작업이 필요해 일손이 많이 필요했지만, 지금처럼 수요 자체가 없어 일손도 그만큼 필요 없게 됐다. 거베라로 먹고 살던 지역민도 소득이 줄어들게 됐다.
출하 시기가 지나거나 비닐하우스 안에서 말라 죽은 꽃들은 바로 옆 예안천 강둑에 임시로 버려졌다. 팔려 나가야 할 꽃들은 버려지고, 야생의 샛노란 유채꽃은 그 옆에서 만개해 있다. 비닐하우스에서 자란 꽃이 나중에 더 귀한 대접을 받을 줄 알았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야생의 유채꽃이 그나마 드문 드문 오가는 이들의 눈길을 잡으며 ‘귀한’ 신세가 됐다.
김해시 대동면 근처 예안천에 버려진 장미꽃(사진 앞쪽)들이 말라 있다. 그 뒤로 유채꽃들이 하천을 따라 잔뜩 폈다. /박호현기자
양재동 aT화훼공판장에 따르면 올 초부터 이날까지 생화는 전년 동기 대비 21% 급감했다. 부산경남화훼농협서도 같은 기간 32%나 거래가 줄었다. 코로나19 사태로 매년 있던 졸업과 개학특수가 한꺼번에 실종된 탓이다.
5월 어버이날을 맞아 카네이션을 잔뜩 수입해 놓은 것도 걱정이다. 한 수입업체 임원은 최근 중국서 카네이션 100만송이를 들여 왔다고 한다. 지난해와 비슷한 규모다. 5월 가정의 달 성수기에 맞춰 올 초 계약을 했는데 코로나19로 계약을 취소하려고 했는데 여의치 않아 그냥 들여온 것이다. 이 관계자는 “(올해 초 계약을 한) 중국 하이난의 카네이션들이 막 쏟아져 들어 오고 있는데 5월 수요조차 사라지면 손해가 막심하다”며 “수입 (카네이션) 물량은 많아 가격은 떨어지는데 수요마저 줄어 (가격이) 더 떨어지게 생겼다”고 안절부절했다.
김해시 대동면에 있는 한 유리온실 모습. 텅빈 공장처럼 아무런 꽃도 없다. /박호현기자
대동면 화훼농의 70%는 영세 임대농이다. 30%만 자가농인 셈이다. 이들 영세 임대농은 코로나19가 원망스럽기 그지없다. 특히 돈을 들여 비닐온실 대신 유리온실을 만들어 놓은 영세 임대농은 말할 것도 없다. 비닐하우스는 평당 투자비가 10만원 수준이지만 유리온실은 80만원에 달한다. 투자해 놓고 매출이 없으면 시쳇말로 “쫄딱 망하는 것도 시간문제”다. 이런 우려들은 화훼농가를 한바퀴 둘러보면 현실이 될 수 있겠다는 걱정이 든다. 실제 근처 3,000평 규모 유리온실 농장은 꽃을 심은 흔적조차 없었다. 수요가 없다 보니 대규모 투자를 해 놓고도 놀리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올초부터 시작된 화훼농가살리기 운동이 이들에게 단비가 되고 있다. 한 화훼농민은 “정부와 기업이 화훼농가살리기 운동을 해줘 일부 꽃을 출하할 수 있게 돼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로 향하는 기자의 등 뒤에서 “화훼농가 살리기 운동에 더 많은 국민들이 참여할 수 있게 잘 써 달라”며 큰소리로 외쳤다.
/김해=박호현기자 greenligh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