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공짜 지원은 없다" 못박아…'대기업 퍼주기' 논란 차단

■ 기간산업 지원 정부가 지분 갖는다
경영과정 감독 여지 만들어
업황개선 땐 배당·시세차익도
産銀·輸銀 회사채 매입 검토
50조 이상 파격지원 가능성


정부가 항공 등 기간산업 지원의 반대급부로 ‘정상화 시 이익 공유체계 마련’을 내세운 것은 대기업 지원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대기업에 지원을 해줬을 때 ‘대기업이 잘 나갈 때는 이익을 대기업 및 유관기관만 차지하더니, 흔들리니까 혈세로 지원을 해준다’는 여론의 반발이 나올 수 있다. 이른바 ‘대기업 퍼주기’ 논란으로 이 같은 우려가 나오기 전에, 강력한 전제조건을 내걸어 ‘대기업이 정상화돼도 이익은 사회로 확실히 환원된다’는 신호를 주겠다는 것이다.

20일 정부의 한 관계자는 “국민 세금을 투입해 기간산업을 지원했는데, 업황이 좋아지니 그 이익을 대기업이 다 가져간다는 반발이 나올 수 있다”며 “물론 기업 업황이 좋아지면 법인세 등을 내서 사회에 기여를 하겠지만 그것 이상의 정상화 이익 공유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특히 미국의 지원방안을 준용해서 대책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최근 위기의 항공업계에 250억달러의 지원을 결정하면서 지원액의 10% 수준에서 미 재무부가 항공사들로부터 보통주를 일정 가격에 살 수 있는 워런트를 취득할 수 있게 했다. 인수가액은 지난 10일 종가다. 구체적으로 델타항공은 54억달러를 지원하는 대신 전체 보통주의 1%인 660만주를 주당 24달러 40센트에 미 재무부가 살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아메리칸에어라인은 58억달러를 지원하는 대신 보통주의 3.2%인 1,370만주를 주당 12달러 50센트에 살 수 있는 권한을 재무부가 가졌다. 방민진 유진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미국 정부도 항공업계에 대한 지원이 공짜가 아님을 분명히 했고 정부의 감독 여지를 만들어 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우리도 정부가 항공사의 지분을 일부 취득하게 되면 앞으로 경영과정에서 잘못된 길로 나아가는 것을 감시할 수 있다. 아울러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끝나 업황이 개선되면 주가가 오를 것이고, 배당을 받아 그동안의 지원을 국고로 회수할 수 있다. 아울러 주가가 뛰면 차익으로 역시 이익을 봐 그동안의 혈세 지원을 보상받을 수 있다.


정부의 항공업 등 기간산업 지원 방안은 산업은행·수출입은행 출자를 통한 자본확충 후 기간산업 회사채 매입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처럼 특수목적법인(SPV)을 세우고 정부가 지급보증을 하는 방식도 도입할 수 있지만 이미 산업은행을 통한 회사채 인수 체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굳이 새로운 정책을 만들 필요가 없고 국회에서의 동의 절차도 필요하는 등 시간도 소요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어떤 기업은 지급보증 대상으로 삼고, 어디는 배제할지 결정하는 과정에서 형평성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산은, 수은이 오랜 기업 심사 노하우를 활용해 지원할 기업을 선정하고,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산은, 수은에 현금 출자를 하는 방식이다. 보유하고 있는 공기업 주식을 현물출자하는 방식도 적용할 수 있다. 시장에서는 지원 규모가 최소 20조원 이상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정부가 예상을 뛰어넘는 대책을 발표하며 시장에 ‘충격요법’을 준 전례를 고려하면 50조 이상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에 따른 대표적 반대급부는 고용유지다. 문재인 대통령도 19일 “노사 합의를 통해 고용을 유지하는 기업을 우선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구체적으로 미국은 9월 말까지 항공사에 대해 무급 휴직 금지 및 고용유지를 내걸었는데 우리도 이 같은 방안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또 일정 기간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을 제한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경영진에 대한 성과급 제한 등 임원 보상 제한안도 나올 수 있다.

현재 대한항공은 현금이 바닥을 드러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지난달 6,228억원의 항공운임채권 유동화증권(ABS)을 발행했지만 이달 만기 도래하는 회사채 2,400억원과 매월 발생하는 고정비용 약 5,000억원을 감안하면 손에 쥘 수 있는 현금은 거의 없다. 연말까지 상환하거나 차환해야 하는 채무만 약 4조 300억원에 이른다.

생산과 판매 모두 벼랑 끝으로 내몰린 자동차산업도 어렵긴 매한가지다. 자동차산업연합회는 국내 완성차ㆍ부품업계에 당장 필요한 유동성 규모를 32조 8,000억원 이상으로 추산한다. 수요가 급감하고 정제 역마진에 내몰린 정유업계 역시 1·4분기 영업손실이 2조 5,000억원에 육박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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