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의 시간’ 스틸 / 사진=넷플릭스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뜻밖의 상황에 벌어진 영화 ‘사냥의 시간’ 표류 사태가 드디어 일단락됐다. 결국 정착지는 넷플릭스다.
국내 상업 영화 최초로 극장 개봉 없이 넷플릭스로 직행하게 된 ‘사냥의 시간’의 길고 길었던 갈등 봉합의 시간을 순서대로 짚어본다.
■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오른 ‘사냥의 시간’, 2월 26일 개봉 연기
‘사냥의 시간’은 개봉 전부터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오르며 관심을 받았다. 충무로 대표 배우 이제훈, 안재홍, 최우식, 박정민과 영화 ‘파수꾼’의 윤성현 감독의 만남으로 기대를 모으고,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 한국 영화 최초로 베를리날레 스페셜 갈라 부문에 초청받으며 순항을 예고했다.
이에 ‘사냥의 시간’은 2월 26일 국내 개봉을 목표로 언론시사회를 비롯한 인터뷰, 무대 인사 등 이벤트를 준비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로 2월 25일 예정돼있던 언론시사회를 취소하고 3월로 개봉을 연기하기로 결정하며 난항이 시작됐다.
■ 3월 23일 리틀빅픽쳐스-콘텐츠판다 갈등 수면 위로
3월이 되자 ‘사냥의 시간’을 둘러싼 갈등은 수면 위로 드러났다.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전염병 경보 단계 중 최고 위험 등급인 팬더믹(pandemic)을 선언하면서 영화계는 먹구름이 꼈고, ‘사냥의 시간’도 예외는 아니었다. 투자·배급사인 리틀빅픽쳐스는 넷플릭스와 함께 3월 23일 “‘사냥의 시간’을 전 세계 190여 개국에 오는 4월 10일 넷플릭스에 단독 공개한다”고 공동 성명을 냈다. “코로나19 확산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더 많은 관객들에게 작품을 소개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이유였다.
그러자 곧바로 해외 세일즈사인 콘텐츠판다는 리틀빅픽쳐스의 이중계약을 문제 삼으며 유감을 표했다. 콘텐츠판다는 “리틀빅픽쳐스는 당사와 충분한 논의 없이 3월 초 구두통보를 통해 넷플릭스 전체 판매를 위해 계약 해지를 요청해왔고, 3월 중순 공문 발송으로 해외 세일즈 계약해지 의사를 전했다”면서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리틀빅픽쳐스는 콘텐츠판다의 입장에 팽팽히 맞서며 반박했다. 리틀빅픽쳐스는 코로나19로 극장 개봉을 포기한 것을 ‘천재지변’으로 해석하며 “천재지변 등의 경우 쌍방에 책임을 물을 수 없도록 본 계약서에 명시돼 있다”고 주장했다.
4월 23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되는 ‘사냥의 시간’ 포스터 / 사진=넷플릭스 제공
■ 이중 계약 주장한 콘텐츠판다, 4월 8일 리틀빅픽쳐스와 법적 분쟁에서 勝
리틀빅픽쳐스와 콘텐츠판다의 날선 공방은 결국 법적 분쟁으로 번졌다. 갈등 봉합을 위해 양사는 2주일간 몇 차례 긴급 회동을 거쳤으나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했고, 콘텐츠판다는 리틀빅픽쳐스를 상대로 법원에 해외 판매금지가처분 및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결과는 콘텐츠판다의 완승으로 매듭지어졌다. 4월 8일 서울중앙지법은 콘텐츠판다의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사냥의 시간’을 국내를 제외한 전 세계에서 극장, 인터넷 등을 통해 상영·판매·배포 등으로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이에 4월 9일 넷플릭스는 공개 일정을 하루 앞두고 보류를 발표했다.
법원의 결정에 따라 콘텐츠판다와 리틀빅픽쳐스는 4월 10일 또다시 긴급 회동을 거친 뒤 리틀빅픽쳐스의 공개 사과와 합의금으로 합의를 봤다.
■ 4월 16일 리틀빅픽쳐스의 공식 사과, 그리고 4월 23일 넷플릭스 공개 발표
4월 16일 리틀빅픽쳐스는 성명을 내고 콘텐츠판다에 공식 사과했다. 리틀빅픽쳐스는 “배급 과정의 혼선과 혼란에 대해 배급사로서 전하기 힘든 죄송함과 책임감을 느낀다”며 “무리한 진행으로 사냥의 시간 해외세일즈사로 1년여간 해외 판매에 크게 기여한 콘텐츠판다의 공로를 무시한 채 일방적인 해지 통보를 했다”고 반성의 말도 전했다.
같은 날 콘텐츠판다는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취하하면서 “콘텐츠판다의 적법한 권리를 믿고 계약을 체결한 해외 바이어들과의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과 그동안의 노력이 허위사실에 기반한 억측으로 인해 폄하되는 것을 막기 위해 법원으로부터 콘텐츠판다의 정당한 권리와 의무 수행을 확인 받았다”고 리틀빅픽쳐스의 사과를 수용했다.
양사의 합의로 인해 ‘사냥의 시간’은 다시 넷플릭스의 품으로 돌아갔다. 4월 20일 넷플릭스는 오는 23일 전 세계 190여 개국에 ‘사냥의 시간’을 동시 공개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로써 ‘사냥의 시간’은 국내 투자·배급사 중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로 직행한 첫 사례가 됐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19가 ‘천재지변’에 상응하는가라는 질문이 쟁점이 됐고, 넷플릭스 같은 OTT 플랫폼이 확장되는 상황에서 큰 시사점이 됐다. 많은 의미를 남긴 두 달간의 공방을 마친 ‘사냥의 시간’에 대한 평가는 이제 시청자들의 손에 맡겨졌다.
/추승현기자 chus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