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는 최악의 국회였다. 법안 처리율은 20일 현재 34.3%로 역대 국회 최저치를 기록했고 지난 4년간 국회는 ‘동물국회’와 ‘식물국회’를 오갔다. 일부 더불어민주당 인사들과 전문가들은 21대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을 거둘 수 있었던 한 이유도 국민들이 이 같은 국회 상황에 대한 책임을 주로 야당에 물었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서울경제가 이번 총선에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한 유권자들로부터 21대 국회는 어떤 국회가 됐으면 좋겠는지를 물어본 결과 대다수의 유권자는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법안을 적시에 처리해내는 국회가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시민들이 희망하는 일하는 국회가 되려면 국회의 운영을 교섭단체 대표들이 아닌 운영위원회가 하고 상임위원회와 소위원회 회의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또 법안들의 발목을 수시로 잡는 만장일치 관행은 깨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기도 안성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모(29)씨는 “국회는 누가 뭐라 해도 우리나라에 한 곳뿐인 입법기관”이라며 “제발 21대 국회는 필요한 법안들을 제때제때 통과시키는 국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근 보면 텔레그램 n번방 사건 관련 법안들이 쏟아지고 있는 것 같다”며 “사회적으로 문제가 불거지고 나니까 뒤늦게 입법에 나서는 모양새라 많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서울 강동구에 사는 주부 최모(54)씨는 “20대 국회는 만날 싸우기만 해서 아이들이 싸우는 이유가 뭔지를 물었을 때 설명하기가 난처할 때가 많았다”며 “21대 국회는 당리당략을 좇아 싸움만 할 게 아니라 경제와 민생 살리기를 위해 협력하고 결정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고 힘줘 말했다.
세종에 있는 한 연구기관에서 근무하는 이모(42)씨는 “정말이지 일 시키는 국회 말고 일하는 국회가 되면 좋겠다”며 “국회가 정쟁을 하지 않고 피감기관에 일을 시키는 만큼만 열심히 머리를 맞대고 일한다면 욕먹는 국회가 아닌 존경받는 국회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일하는 국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스템 개선과 관행 타파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현출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교섭단체 대표들의 회의 중심 체제로 국회가 운영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거대정당도 1명, 소수정당도 1명이 나와서 회의를 하면 ‘다수당의 과소대표’ ‘소수당의 과다대표’ 문제가 생긴다”며 “이렇게 일대일 구도가 돼버리면 합의도 난망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뿐만 아니라 원내대표들에게만 맡겨놓으면 원내대표들이 합의를 해도 의원총회가 그 합의에 대해 ‘비토’를 해버리면 또 원위치가 돼버리는 문제도 있다”며 “각 정당의 대표들이 의석 비율에 따라 두루 참여하고 논의 내용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운영위에 국회 운영을 맡기면 이런 문제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도 “원대대표들끼리 논의를 하다 보니 ‘정치 쟁점화’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정치 쟁점화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서는 국회 운영 방식을 바꾸는 동시에 ‘국회선진화법’도 개정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정치권에서는 국회선진화법이 20대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 사태’를 발생시킨 한 원인이었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법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 심의를 위한 상임위와 소위 회의를 정기적으로 열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박 교수는 “수십 년의 세월을 거치며 굳어진 정치문화를 한순간에 고치기는 쉽지 않다”며 “제도적으로 고쳐야 할 정치문화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본회의 개최 법정화’를 통해 본회의가 자주 열리도록 해야 한다. 지금은 여야가 파열음을 내면 아예 본회의가 열리지를 않는다. 예를 들어 본회의가 매주 한 번씩은 열리도록 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며 “소위 회의 개최도 상설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로문 민주정책개발원 원장도 “상임위 회의는 매달 열려야 하고, 소위 회의는 수시로 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단 이 원장은 불필요한 본회의 개최는 줄여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교섭단체 대표 연설하고, 대정부질문하다 보면 한 달에 상임위 회의가 열리는 게 10일이나 되는지 모르겠다”며 “본회의가 열릴 때는 상임위 회의가 못 열린다. 상임위가 제대로 굴러가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만장일치 관행에 대해 언급했다. 이 원장은 “실무적으로 볼 때 지금 국회의 가장 큰 문제는 만장일치 관행”이라며 “단 한 명의 의원이라도 합의하지 않으면 일을 할 수가 없다. 국회 혁신특별위원회가 내놓은 안도 결국은 이 관행을 없애기 위해 마련된 것”이라고 말했다. ‘과반정당’의 일방적인 법안 처리 우려와 관련해서는 “대화와 타협을 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라며 “그런데 지금까지는 대화하다가 시간만 낭비한 게 현실이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때는 다수결 원칙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임지훈·진동영·김혜린기자 jhl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