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의료 막힌 中企...'안방' 떠나고 개점휴업도

코로나로 원격의료 관심 높지만
의협 등 반대에 '대못' 못뽑아
인성정보 美서 헬스케어 사업 등
국내 벤처기업들 해외 진출 속도
"글로벌 경쟁력 뒤처질라" 우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국내에서 원격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원격의료 기업들은 규제 때문에 미국 등 해외로 나가거나 국내선 할 수 있는 사업이 없어 폐업 위기에 몰려 있다. 이러다가는 글로벌 원격의료 기술을 가진 기업들을 가지고도 남들 다 하는 원격의료 도입에는 뒤처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2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원격의료 업체인 인성정보(033230)는 미국의 주요 헬스케어 기업과 함께 당뇨병과 같은 만성 질환 관리를 위한 원격 환자모니터링(RPM) 시범사업을 연말까지 진행한다. 내년부터는 정식 사업에 돌입한다. 인성정보는 2005년부터 원격의료 사업을 시작했지만 국내 규제 때문에 진척이 없자 2010년부터 미국 시장으로 곧바로 뛰어들었다. 미국 진출 7년 동안 별 성과를 못 내다 2017년 미국의 퇴역군인 홈케어서비스 사업에 본격 참여하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인성정보 관계자는 “미국의 퇴역군인 홈케어서비스는 세계 최대 규모 원격 의료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미국에 이어 이탈리아 등 해외서 승승장구하는 인성정보도 국내선 맥을 못추고 있다. 코로나19로 대구지역 요양원에 원격 의료와 모니터링에 필요한 헬스케어 기기와 시스템을 무상으로 제공했지만, 이를 불법으로 규정한 국내 규제때문에 한시적 서비스 제공에 그칠 공산이 크다.

국내에선 의료법상 의료인 간 원격 의료만 허용돼 있다.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나 원격모니터링은 금지돼 있다. 미국서 의사·환자 간 원격모니터링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인성정보가 국내에 서비스를 들여오면 불법이 되는 셈이다.


국내 1위의 원격의료 업체로 알려진 비트컴퓨터는 속내를 들여다 보면 원무나 진료내용 등의 의료정보를 ‘관리’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런 방대한 데이터를 통해 원격진료와 모니터링 등이 가능하지만 현행법이 불법으로 규정하다 보니 선뜻 사업에 나서지 못하고 있어서다. 원격의료 벤처기업인 에이치쓰리시스템은 국내서 사업을 추진하다 작년에 경영상황이 어려워져 개점휴업 상태에 몰렸다. 미국서도 원격의료 사업을 추진했지만 국내 실적이 전무하고 투자여력도 없다 보니 현지서 경쟁력에 밀려 난 것이다.

이날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삼성전자가 개발한 모바일용 혈압측정 애플리케이션을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로 세계 최초로 허가를 했지만, 의료법에 걸려 의료기관에 데이터를 보내는 게 금지돼 원격의료 행위는 불가능하다.

원격의료 기업들이 글로벌 수준의 기술력을 갖추고도 국내서 맥을 못추는 것은 의사협회 등의 반발로 규제 대못이 뽑히질 않고 있어서다. 의사협회는 원격 의료를 공식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원격 의료가 허용되면 대형병원으로 환자 쏠림 현상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원격 의료를 찬성하는 대형 병원과 달리 대다수 개업의와 중소병원은 이를 반대하는 것이다. 원격의료 업체 관계자는 “의협의 눈치를 보느라 원격의료 필요성 등에 대한 홍보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조심스러워했다.

미국의 인사이트 파트너가 올해 초 발표한 홈헬스마켓 전망 보고서는 전 세계 건강관리 시장은 지난 2018년 18억 8,730만 달러에서 2027년에 200억 8,300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연평균 성장률은 30.1%에 달할 정도로 엄청난 성장세다. 특히 우리나라도 2045년에 세계에서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중이 가장 높은 국가가 될 것으로 예측되면서 ICT 기술을 융합한 원격의료 등을 폭넓게 허용해야 노년 의료비 급증에 따른 재정부담을 덜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호현기자 greenl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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