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문특파원의 차이나페이지] <51> 일확천금 노리다 회계부정으로 몰락...中기업에 美투자자 경계심

■루이싱커피, 미중 증시 디커플링 계기 될까
'중국판 스타벅스'로 승승장구하다 매출조작으로 퇴출 위기
온·오프 교육업체 하오웨이라이 등도 회계부정 시비 휘말려
美 코로나19 사태 해소되면 中기업 솎아내기 본격화 가능성
中당국 규제강화 나섰지만 美공매도 세력에 화살 돌리기도

지난해 5월17일 루이싱커피의 미국 나스닥 상장식에서 루정야오(왼쪽 두번째) 회장과 첸즈야(오른쪽) 최고경영자(CEO)가 거래 시작을 알리는 징을 울리고 있다. 루이싱커피는 회계부정으로 겨우 1년도 안 돼 퇴출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해 9월27일 블룸버그통신 등 미국 언론들은 백악관이 중국 기업에 대한 미국 증시 상장 폐지, 미국 공적연기금의 중국 자본시장 투자 제한 등의 규제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 불꽃을 튀길 때다. 블룸버그통신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당국자들이 수주간 이 같은 규제방안을 검토해왔다”고 전했다. 이 같은 보도가 나오면서 알리바바·바이두 등 미국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들의 주가가 폭락했다. 즉각 미 재무부가 보도를 부인하며 급한 불을 껐지만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다. 앞서 미 의회에도 중국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법률이 제출된 상태다. 중국 기업에 대한 미국의 불신과 불만이 적지 않은 것이다.

이달 2일에는 나스닥 상장사인 중국의 ‘루이싱(瑞幸·영어명 Luckin)커피’가 지난해 매출을 조작했다고 실토하면서 이 회사 주가는 급락했다. ‘중국판 스타벅스’를 꿈꾸며 승승장구하던 이 회사의 회계부정은 곧바로 중국 기업에 대한 미국 투자자들의 뿌리 깊은 의혹을 되살렸다. 미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해소될 경우 중국 기업 솎아내기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루이싱커피의 회계조작 사건이 미중 증시 간 디커플링(탈동조화)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미 미국에서는 중국 기업의 회계에 대해 믿을 수 없다는 의견이 많은데 실제 이것이 현실화된 것이다. 일확천금을 꿈꾸던 중국 스타트업이 부정과 부실을 통해 키운 덩치로 투자자들을 현혹하면서 사태를 키운 셈이다. 반면 중국에서는 결과적으로 루이싱커피를 궁지로 몬 미국의 공매도 제도에 대해 비판하는 소리가 높다.


지난 2일 뉴욕증시 개장을 앞두고 메가톤급 이슈가 터져 나왔다. 루이싱커피의 2019년 사업보고서를 기다리던 투자자들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루이싱커피는 지난해 2·4~4·4분기 매출액이 22억위안(약 3,800억원) 부풀려진 것으로 추산된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회사 측은 일부 직원들의 주도로 가장거래를 만드는 방법을 통해 매출 부풀리기가 이뤄졌다고 해명했다. 블룸버그는 이날의 풍경을 “투자자들은 매일 루이싱커피와 함께 하루를 시작했지만 마침내 그것이 ‘독극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루이싱커피가 앞서 공개한 지난해 1·4~3·4분기 매출액은 23억2,900만위안이다. 지난해 3·4분기 실적 발표 때 루이싱커피는 4·4분기 매출액을 21억∼22억위안으로 추산했다. 지난해 추정 매출액의 40% 가까이가 허위 매출인 셈이다.

회계부정 고백에 2일 루이싱커피 주가는 75.57% 폭락했다. 하루 만에 시가총액 49억7,000만달러(약 6조1,000억원)가 사라졌다. 올해 초 한때 50달러까지 올랐던 루이싱커피의 주가는 7일부터 4.39달러에서 거래가 중단된 상태다. 조만간 퇴출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루이싱커피는 중국의 대표적인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인 스타트업)이다. 2017년 10월 중국 베이징에 첫 매장을 연 루이싱커피는 중국 안팎에서 대형 투자를 유치하며 공격적으로 몸집을 불리는 사업 전략으로 주목을 받았다. 자금을 쏟아부어 직영 점포를 확대하고 마케팅용 ‘공짜·할인 쿠폰’을 고객들에게 살포하면서 소비자를 끌어모았다. 사업을 시작한 지 2년여 만인 지난해 말 기준으로 루이싱커피의 중국 내 매장 수는 약 4,900개로, 글로벌 커피 공룡 스타벅스의 4,300개를 앞질렀다.

하지만 수익성 낮은 확장 위주의 모델은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2018년 루이싱커피는 매출 8억2,100만위안에, 순손실 16억1,900만위안(약 2,800억원)을 기록했다. 그해 총 9,000만잔의 커피를 팔았는데 한 잔을 팔 때마다 평균 18위안(약 3,100원)의 손해를 본 셈이다. 회계부정의 여파로 2019년 사업보고서가 나오지 않았고, 앞선 1·4∼3·4분기 실적 발표 내용이 모두 무효로 돼 지난해 손실 규모는 아직 가늠하기 어려우나 전년보다 작지는 않을 듯하다.

미국 증시에서 요주의 업체는 루이싱커피만이 아니다. 중국 온오프 교육업체인 하오웨이라이도 7일 정기적인 내부 회계감사에서 일부 직원의 조작으로 매출이 부풀려진 사실이 발견됐고 해당 직원은 현재 경찰에 구속됐다고 밝혔다. ‘중국판 넷플릭스’로 불리는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아이치이도 회계부정 시비에 휘말렸다


회계부정까지는 아니어도 중국 3위 전자상거래 업체 핀둬둬와 중국 전기차 제조업체 니오 같이 실적 부진으로 성장성이 의심되는 중국 기업이 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루이싱커피처럼 덩치 키우기에만 몰두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중국 기업 전문 회계법인인 마컴번스타인&핀척의 드루 번스타인 이사는 “여전히 미국 증시를 찾는 중국 기업이 있다”며 “우리는 그들에게 철저한 심사와 더 높아진 기준을 준비하라고 당부한다”고 말했다.


루이싱커피의 추락을 이해하려면 중국 스타트업들의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수많은 창업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이들의 첫째 목표는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것이다. 여전히 대마불사가 남아 있는 중국에서 점유율이 높아지면 더 많은 투자가 들어오고 이는 새로운 점유율 확대로 이어진다. 이에 따라 일단 투자를 유치한 중국 스타트업들은 현금을 태운다는 의미의 ‘사오첸(燒錢)’에 몰두한다. 보조금을 지급하면서까지 가격을 낮춰 소비자의 구매를 유도하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구조는 끊임없이 수요가 창출돼야 선순환이 가능하다. 결국 투자금을 까먹고 회계부정으로까지 몰리게 되는데, 루이싱커피가 전형적인 사례다.

한때 신데렐라처럼 미국 증시에 등장했던 중국 기업들이 잇따라 회계부정이나 만성적자에 시달리면서 미국 투자자들의 시선도 점점 냉정해지고 있다. 르네상스캐피털의 자료에 따르면 미국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이 2018년 32개에서 지난해에는 25개로 줄어들었다. 올해 1·4분기에는 7개였다. 미중 무역전쟁과 코로나19 사태가 있기도 하지만 점점 차이나디스카운트가 부각되는 것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 애널리스트의 말을 빌려 “터무니없는 실적을 약속한 중국 기업들에 대해 보다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며 “오히려 루이싱 같은 기업 주식을 사는, 잘 속는 투자자들에게 비난이 돌아가야 한다”고 전했다.

해외에서 중국 기업에 대한 불만이 커지자 중국 당국도 규제를 강화하겠다며 수습에 나서는 분위기다. 16일 중국 국무원 금융안정위원회는 류허 부총리 주재로 회의를 열고 신뢰경영은 기본 시장의 규칙이라면서 허위정보 공개와 사기 등 행위를 엄정히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안정위는 “최근 일부 상장사가 법률과 규칙을 무시하고 회계부정 등 투자자들의 권익을 침해하는 악질적인 행위를 했다”며 “감독당국이 법에 따라 투자자 보호를 강화하고 상장사들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중국 정부가 대책을 세운다고 해서 이런 사기사건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한탕을 노리고 이에 부화뇌동하는 투기세력이 있는 한 부정사례는 계속된다는 것이다. 특히 문제는 이러한 범죄를 통해 중국 기업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사라지고 중국과 미국의 디커플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무역전쟁 때 한창 끓어올랐다가 코로나19 와중에 잠잠해진 미국 증시에서의 중국 기업 축출 논란이 루이싱커피 사태로 재연될 우려가 커졌다. 물론 중국 측의 반발도 없지는 않다. 미국의 약탈적 자본주의가 중국 기업들을 사냥하고 있다는 불만이다.

루이싱커피의 몰락에는 미국의 공매도 세력이 등장한다. 머디워터스라는 기업으로, 이 회사는 1월 공개한 루이싱커피에 대한 보고서에 지난해 매출이 부풀려졌다는 내용을 담았었다. 그리고 곧바로 루이싱커피를 공매도 대상에 올렸다. 루이싱커피는 처음에는 머디워터스의 주장을 부인했지만 결국 인정했는데, 이것이 2일의 회계부정 실토다.

결과적으로 회계부정을 바로잡았다고는 하지만 머디워터스의 태도는 논란거리다. 부실기업을 찾아 부정적인 보고서를 작성하고 이를 기반한 공매도를 통해 수익을 찾는 방식이 호평을 받을 수만은 없다. 특히 공매도 공격을 당하는 중국 기업에는 공공의 적이 된다. 천쥔더 펀드인베스트먼트 매니저는 “중국 기업에 대한 공매도 남발이 더 많은 중국 기업의 해외진출을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 증시에서는 사실상 공매도가 불가능하다.

루이싱커피는 장첸·탕웨이 등 톱스타를 동원해 홍보에 주력해 왔다. /서울경제DB

미중 무역전쟁과 코로나19를 둘러싼 마찰 속에 미국 증시에서 기업공개(IPO)에 나서는 중국 기업이 줄어들었고 미국 증시를 떠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나스닥 상장사인 알리바바가 지난해 홍콩에 2차 상장을 한 것이 대표적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미국에서 일단 진정될 경우 이런 현상이 심화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에드워드 오 딜로이트 중국IPO 대표는 “잠재적 지정학적 영향에 대한 루머 때문에 지난해 미국에서 중국 기업의 IPO는 줄었고 올해는 더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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