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유례 없는 추락을 하는 상황에서 개인투자자들의 원유시장 ‘베팅’이 불을 뿜고 있다.서부텍사스산원유(WTI) 5월물이 마이너스 40달러선까지 가는가 하면 6월물도 하루 사이에 반토막 수준으로 떨어지는 급락세를 나타내자 원유가 상승과 하락에 투자하는 유가 상장지수증권(ETN)·상장지수펀드(ETF) 거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동안 삼성전자 등 대형주와 바이오 주 등에서 재미를 본 개인투자자들 중 일부가 변동성이 큰 원유 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가운데 실제 ETF·ETN의 가치보다 더 비싼 가격에도 매수를 서슴치 않는 ‘위험한 도박’에 나서는 ‘원유 개미’들에게 전문가들이 ‘경고’를 보내고 있지만 도통 먹혀들지 않는 상황이다.
2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원유 관련 ETN과 ETF 거래대금은 1조16억원을 기록하며 전일의 6,438억원 대비 55.5% 급증했다. 이는 코스피시장 거래금액(13조6,689억원)의 7.3%에 달하는 금액이다. 유가 관련 상품의 거래금액이 이틀 연속 1조원을 돌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신한 레버리지WTI원유선물ETN(H)은 2억5,904만주, 2,546억원어치가 거래됐다. 또 KODEX WTI원유선물(H) ETF도 전 거래일보다 12% 증가한 4,748억원어치가 거래됐다.
유가 하락에 베팅하는 인버스 상품에도 매수세가 몰렸다. 또 삼성인버스2X WTI원유선물 ETN과 신한인버스2X WTI원유선물 ETN(H)의 거래 규모는 각각 1,659억원과 416억원에 달했다.
이 같은 ‘원유 개미’ 군단의 진격은 22일에도 이어졌다. 국제 유가 하락이 재차 이어지면서 변동성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현지시간으로 21일(한국시간 22일새벽) 6월 인도분 WTI는 전날보다 배럴당 43.4%(8.86달러) 하락한 11.57달러까지 주저 앉으며 거래를 마쳤다. 장중 70% 가까이 밀리면서 6.50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7월물 WTI 역시 26달러에서 18달러로 밀려났다. 사상 첫 ‘마이너스 유가’를 기록한 5월물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최종적으로 10.01달러로 마지막 거래를 마쳤다.
새벽 국제 유가 폭락 소식이 전해진 22일 오전 개장한 한국거래소에서 KODEX WTI원유선물(H)의 오전 11시까지 거래대금은 4,000억원을 넘어섰으며 삼성인버스2X WTI레버리지ETN은 2,250억원, 신한인버스2X WTI레버리지ETN도 470억원어치가 거래됐다. 주요 상품 거래대금만 이미 오전 장에서 7,000~8,000억원에 달해 전일 거래대금 기록을 갱신할 것으로 전망된다.
KODEX WTI원유선물(H)은 하한가(-30%)까지 밀려났으며 신한레버리지WTI원유선물ETN도 -22%를 기록했다. 반면 WTI원유선물인버스는 상한가에 근접한 27%까지 급등했다.
삼성인버스2X WTI레버리지도ETN 47%,신한인버스2X WTI레버리지도ETN도 45%로 폭등했다.
폭발적인 거래 증가속에서 유가 ETN와 ETF상품의 가격 왜곡현상도 심각해지고 있다. 국제유가가 40% 이상 급락했지만 거래소의 상하한가 규정으로 인해 국제유가를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KODEX WTI원유선물(H)은 오전 11시 5분 기준 정상가격이 3,494원이지만 전일대비 30% 낮은 하한가인 3,960원에 거래될 수 밖에 없어 괴리율이 13% 이상 벌어지고 있다.
또 개인투자자들이 몰리는 데다 발행사가 시장조성에 실패하면서 괴리율이 수백퍼센트씩 벌어지기도 했다. 오후 2시 46분 현재 신한 레버리지WTI ETN의 정상가치(IIV)가 67.99원인데 이보다 916% 비싼 685원에 거래되고 있다. 실제 가치에 비해 턱없이 비싼 가격에 거래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 ETN은 오전에도 괴리율이 600% 가량 벌어졌으나 오후 들어 국제원유 가격이 추가 하락하면서 괴리율이 더 크게 벌어지고 있다.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개인 투자자들은 괴리율이 벌어지면 절대 매수를 해선 안된다”라고 재차 당부했다. /이혜진기자 has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