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경. /서울경제DB
지역 문중(같은 선조를 둔 자손들이 제사를 목적으로 조직된 집단)을 자처하는 단체의 실체가 고유 문중과 동일하지 않으면 토지 등 관련 재산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한 단체가 사기꾼이 팔아 넘긴 문중 명의 땅을 되찾겠다며 소송을 냈지만 대법원은 이 단체가 진짜 문중과 동일한 실체인지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패소 판결을 냈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창녕조씨문중을 자처하는 단체가 영광군 산림조합을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말소 등 소송 상고심에서 사건을 광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2일 밝혔다. 재판부는 “특정인을 배제하기 위한 목적에서 유사단체임을 표방하여 이 사건 부동산의 소유명의인과 동일한 단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이 단체는 지난 1932년 이래 문중 명의였던 전남 영광군 땅에 대해 조 모씨가 문중 대표를 사칭해 한 모씨에게 소유권이전등기를 했다고 주장했다. 한씨는 이 땅에 근저당권과 지상권을 설정해 영광군 산림조합으로부터 대출을 받았고, 두 사람은 이 돈을 개인적으로 썼다. 이에 또 다른 조 모씨 등 20여명이 창녕조씨문중을 자처하며 “소유권이전등기가 무효이며 근저당권·지상권 모두 말소돼야 한다”며 산림조합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소송을 낸 이들이 소유권등기의 주체인 문중과 동일한지, 문중 가운데 일부만으로 구성된 유사단체가 똑같이 소유권 계약과 소송이 가능한지가 쟁점이었다. 원고 측은 자신들이 고유한 의미의 문중은 아니며 전랑공의 후손 중 영광군 거주 성년 남성으로 구성된 유사단체라고 주장했다. 1·2심 모두 이 단체가 문중과 같은 자격이 있다고 봤다. 1심 재판부는 “매년 음력 9월 15일 시제를 지내는 등 실체가 있어 당사자능력이 있다”면서도 “소송이 적법한 대표자에 의해 제기되지 않았다”며 각하했다. 2심은 “주소지가 동일하고 원고 이외 다른 문중이 부동산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다”며 원고 측의 실체를 인정하는 한편 대표자 선정 과정에 하자가 없다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반면 대법원은 소송을 낸 단체가 문중의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며 파기환송을 결정했다. 재판부는 이 단체에 대해 “어떤 목적으로 전랑공의 후손 중 영광군에 거주하는 성년 남자로 구성원을 제한했는지, 어떤 공동재산을 형성했는지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다”며 “구성원 명단도 전부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박준호기자 violato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