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수요 위축, 가동률 하락, 유동성 위기에 몰리면서 정부 정책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면역력’이 약해진 산업계에 극복을 위한 처방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산업계는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세 성격의 ‘전력산업기반기금’ 부담 감면을 호소하고 있다. 전력기금은 전기요금에 3.7%의 부담금을 부과해 조성하는 기금이다. 모든 전기요금 고지서에 부가가치세와 함께 부과된다. 산업계는 이 기금이 필요 이상으로 과다하게 걷히며 부담이 되고 있다고 호소한다. 일각에서는 정작 취지에도 맞지 않는 ‘엉뚱한’ 곳에 쓰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며 요율 인하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22일 산업계에 따르면 지속적으로 전기요금이 인상되는 가운데 전력기금 요율은 15년간 동결되면서 기업들에 부담이 매년 가중되고 있다. 10년 전인 지난 2009년 1조1,900억원대였던 부담금은 지난해 2조1,830억원으로 두배가량 늘었다. 기금 부담의 무게를 가장 많이 느낀 것은 중소기업들. 2018년 중소기업중앙회의 부담금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력기금은 ‘지출이 가장 많은 부담금’ ‘3년간 부담률이 가장 높아진 부담금’ 1위로 꼽혔다. 또 부담금 수준의 적정성 정도 조사결과 부담 수준이 과도한 부담금 순위 2위에 오르기도 했다.
전기 사용이 많을 수밖에 없는 대형 제조업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002년 이후 산업용 위주로 전기요금이 오르면서 국제 경쟁력 약화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로 고철을 녹여 쇠를 만드는 ‘전기로(爐)’ 방식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은 “전기요금이 원료 값만큼이나 중요한 상황이어서 원가 구조가 심각하게 흔들릴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계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이 가중된 이때 전력기금 요율 인하가 별도의 예산 편성 없이 모든 국민과 기업들의 부담을 즉각적으로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강조한다. 전기사업법에 따르면 산업부 장관은 전력기금 부담이 축소되도록 노력하고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업계는 전력기금의 요율을 현재보다 1%포인트 인하하면 기업을 포함한 전 국민의 납부 부담이 연간 약 6,000억원 경감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기금을 과다하게 쌓아둘 뿐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노력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8년 기준 전력기금 여유 재원은 4조1,848억원으로 2009년의 2,442억원 대비 724% 증가했다. 지난해는 5조2,217억원이 쌓여 있는 것으로 추산되며 현 요율(3.7%)을 유지할 경우 여유 재원이 오는 2023년 5조6,923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기획재정부와 감사원도 이 같은 시각에 공감하며 각자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여유재원 규모가 과다하다며 산업통상자원부에 ‘요율 인하’를 권고한 바 있다. 국내의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전력기금이 필요한 규모에 비해 과다하게 징수된다는 지적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라며 “합리적 기준에 의해 부과해 준소세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금 운용 방식에 대해서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기업을 포함한 전 국민의 준조세로 조성된 것인 만큼 그 취지에 맞게 전력산업 발전을 위한 공공사업에 사용돼야 하지만 기금의 절반가량은 금융기관에 예치되거나 정부의 탈원전 정책 지원에 편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산업부는 올해 전력기금 전체 지출 약 2조원 가운데 60%인 1조1,000억원을 신재생에너지 보급 활성화에 활용할 계획이다. 또한 한국전력은 2022년 전남 나주에 한전공대를 신설하고 이에 소요되는 비용 약 1조6,000억원을 시행령을 바꾸면서까지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 지원할 방침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 국민이 납부하는 전기요금을 정부가 필요할 때 꺼내쓰는 ‘곳간’ 정도로 인식하는 것 같다”며 “제대로 쓰지 못한다면 인하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한동희기자 dwis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