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유동성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졌던 회사채 신용등급 AA급 이상 우량기업들어 너도나도 회사채 발행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특히 이들 기업들은 기존 대출상환에 필요한 금액보다 더 많은 규모를 운전자금으로 빌린다고 밝혀, 코로나 19로 닥쳐올 유동성 위기에 대비하고 있다.
2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달 들어 기아자동차와 롯데칠성음료, 롯데푸드(002270) 등이 각각 6,000억원과 3,000억원, 1,000억원 어치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이달말까지 발행 예정 시점을 넓혀보면 GS(078930)(2,000억원), SK에너지(5,500억원), 호텔신라(3,500억원), 롯데지주(004990)(1,100억원) 등도 공모 회사채 시장의 문을 두드린다. 코로나19로 회사채 시장이 극심하게 얼어붙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회사채 시장은 지난 1·4분기 기준 발행규모가 15조9,000억원으로 전년의 18조원에 비해 11.7%나 쪼그라들었을 정도로 냉랭한 상황이다.
우량기업들이 차환이 아닌 운전자금까지 빌리는 것은 코로나19로 하반기 기업 자금사정이 더 악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날 3년·5년·7년물로 나눠 총 6,000억원을 발행한 기아자동차는 기존 채무를 상환하는 용도로 2,500억원을 사용하고 나머지는 기업운영자금에 쓰겠다는 계획이다. 글로벌 셧다운과 소비절벽에 버티기 위해 현금확보에 적극 뛰어든 것이다. 저유가로 실적이 크게 나빠진 SK에너지도 회사채 발행규모의 절반 수준인 2,500억원을 기업운영자금으로 잡아뒀다. 앞서 언급한 기업 가운데 GS 정도만 새로 발행하는 회사채에 보유 중인 1,000억원을 더해 상환한다고 밝혔다. 최근 회사채를 발행한 기업의 한 관계자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회사채 발행”이라며 “현금흐름이 빡빡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최대한 보수적으로 발행 규모를 잡았다”고 말했다.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가 동원된 시장에서도 AA급 수준은 돼야 기관투자자들이 움직인다는 점도 기업들의 유동성 확보를 부추기고 있다. 지난달 1일부터 이달 22일까지 발행한 일반회사채 건수는 266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의 332건에 비해 19.8%나 감소했다. 해마다 4, 5월에 회사채 상환 시점이 몰려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부 기업은 회사채 발행을 통해 대환을 진행할 여력이 안된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지난 6일 본격적으로 시장에 뛰어든 채안펀드도 우량기업의 대환용 회사채에 한정해 매입에 나서며 회사채 쏠림 현상은 더욱 뚜렷해 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단기어음(CP)나 전환사채(CB)라를 통해 자금을 확보하려는 대기업이 잇따르는 것도 코로나19발 자금경색이 가져온 결과이다. 대기업 계열사로는 이례적으로 2,400억원 규모 전환사채(CB)를 발행한 현대로템이나 ‘현금부자’에 속했던 SK이노베이션(096770)과 SK에너지, GS에너지, 현대오일뱅크 등이 CP 발행에 뛰어들었다.
재계 일각에서는 우량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에 대해 채안펀드의 시장 개입으로 다소 누그러진 분위기를 틈타 서둘러 현금확보에 나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코로나19의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는 현 시점에서 절대 불변의 자산은 현금”이라며 “우량기업 입장에서는 채안펀드라는 지원군이 일정 물량을 매입한다는 전제 아래, 포스트 코로나 전환국면에 공격적인 자산매입으로 태세전환 하기 위해서 곳간을 최대한 넉넉하게 만들겠다는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수민·김민경기자 noenem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