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마지막 공개 행보는 지난 12일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과 함께한 서부지구 공군부대 시찰이었다. 그로부터 열흘째 돌연 자취를 감추면서 세계 각지에서는 온갖 추측이 끊이지 않고 있다. 청와대가 “김 위원장이 측근 인사들과 지방에 체류 중”이라고 밝혔고 일각에서는 그 장소를 강원도 원산이라고까지 지목했으나 이제는 최고지도자 후계구도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특히 북한 관영매체들까지 이례적으로 침묵을 지키면서 이미 제기된 심혈관계 수술설 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22일 한미일 협의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이 김 위원장이 사망 등을 이유로 통치를 할 수 없게 될 경우 ‘권한을 모두 김여정에게 집중한다’는 내부 결정을 지난해 말 내렸다’고 보도했다. 노동당 중앙위원회 총회 이후 김여정 명의로 된 지시문이 당과 군에 많이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요미우리는 고혈압·심장병·당뇨병 등 김 위원장의 건강이 복합적으로 악화돼 1월 프랑스 의료진이 북한을 방문했다는 정보도 있다고 전했다.
김 제1부부장을 중심으로 한 후계구도 가능성을 제시한 것은 요미우리뿐만이 아니다. 영국의 유력 매체인 가디언과 미국의 블룸버그통신·뉴스위크·뉴욕포스트 등도 긴급사태 시 김 제1부부장을 가장 유력한 후계자로 다뤘다.
실제 김 위원장과 스위스에서 함께 유학을 한 김 제1부부장은 11일 정치국 후보위원에 복귀하는 등 최근 권력 2인자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특히 3월에는 자신의 명의로 대남·대미관계에 관한 담화를 직접 발표하기도 해 존재감을 과시했다.
다만 요미우리 등의 보도가 일부라도 사실일 경우 이는 상당히 의미심장한 결정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북한 체제 특성상 이른바 ‘최고 존엄’의 후계구도는 현 지도자가 고령이거나 건강상태가 매우 위중할 때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자녀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 위원장이 직계비속이 아닌 형제를 후계자로 거론했다는 것 자체가 정상적인 절차가 아니라 긴급상황에 따른 섭정 정치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말이 된다.
선대인 김일성 주석의 경우 68세인 1980년 6차 노동당 당 대회에서 김정일을 후계자로 공식 지명했는데 이때도 상당히 빠르다는 해석이 나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66세인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부터 김 위원장에 대한 권력승계 준비작업을 본격화했다.
30대인 김 위원장은 2010년과 2013년·2017년에 각각 자녀를 낳았는데 둘째가 딸이라는 것 외에 다른 자녀의 성별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동복형제 중에는 김 제1부부장 외에 친형인 김정철이 있고 방계혈족 가운데는 고모인 김경희, 숙부인 김평일이 있지만 이들은 권력구도에서 일찌감치 멀어졌다는 평을 받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마지막 공개 활동으로 남은 서부지구 공군 시찰 장면. 지난 12일 조선중앙TV 보도 화면에는 김 위원장 뒤로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미소를 지으며 서 있다. /연합뉴스
각국 언론이 긴급상황까지 가정하고 예측을 하는 데는 북한 매체들의 침묵도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조선중앙통신·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들은 이날도 김 위원장의 공개 활동을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전날 오후 늦게 ‘김 위원장이 노력영웅에게 생일상을 보냈다’는 짤막한 동정 보도가 전부였다. 김 위원장의 신변이상설이 제기된 지 한참 됐는데도 북한 측에서 논평을 비롯해 아무런 반박 보도를 내지 않자 일각에서는 적어도 심혈관계 수술설 등을 완전한 오보로 보기 어려운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반면 전례에 비춰 또다시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여전히 북한 내부에 특이 동향이 식별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 “외신 보도나 북한 반응에 대해 청와대가 공식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김 위원장의 위치나 수술 여부를 말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2014년 9~10월에도 41일간 잠행하며 뇌사설에 휩싸였다. 당시에도 북한 매체들은 각종 억측에 공식 반응하지 않았다. 추후 김 위원장은 발목 낭종 제거 수술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CNN은 2014년 11월에도 김경희가 남편 장성택이 처형된 후 사망했다고 보도했고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리수용 노동당 부위원장,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 등도 처형설에 휘말렸지만 건재한 것으로 확인됐다.
통일부 관계자는 ‘김여정 후계 대행설’ 등에 대해 “확인해줄 내용이 없다”고만 답했다.
/윤경환·박우인기자 ykh22@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