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정비구역 일몰제가 만든 비효율

박윤선 건설부동산부 기자


“그냥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죠. 이미 아파트가 있는 곳에 아파트 말고 뭘 짓겠어요.”

‘정비구역 일몰제’를 취재하면서 이러한 반응을 생각보다 자주 마주쳤다. 대부분 재건축 단지의 추진위원회였다. 일몰제란 일정 기간 사업진척이 없는 정비사업장을 해제하는 제도다. 지지부진한 곳을 재개발·재건축 구역에서 해제해 시간과 비용의 낭비를 줄이겠다는 취지다.


수년 때로는 십수년씩 사업이 늘어지는 일이 부지기수인 정비사업의 현실을 고려할 때 일몰제는 꼭 필요한 정책이다. 하지만 재건축에서 이러한 일몰제 취지는 힘을 잃는다. 재건축이라는 것이 이미 아파트 단지가 있는 곳에 새 아파트를 세우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일몰제를 적용해 정비구역에서 해제한들 어차피 수년 후에는 노후화 때문에 다시 정비구역으로 지정하고 재건축을 추진해야 한다. 재개발은 정비구역에서 해제되면 도시재생으로 전환되거나 부분개발을 하는 등 선택지가 있지만 재건축의 답은 딱 하나, 아파트 건설뿐이다. 이해당사자인 재건축 관계자뿐만 아니라 담당 공무원들조차도 재건축에 일몰제를 적용하는 것은 낭비라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그러나 아무리 형식적이어도 법적 절차이니 따르지 않을 수는 없다. 일몰제에서 벗어나려면 조합을 설립하든가 소유주 30% 이상의 동의를 받아 일몰 기한을 연장해야 한다. 또 구청에서 정비구역 연장을 신청해도 된다. 여기에는 소유주들의 시간과 비용, 지방자치단체의 행정력이 투여된다. 일몰 연장 여부를 심사하기 위해 도시계획위원회의 자문을 받아야 하는데 이 역시 비용이다. 비효율을 줄이고자 만든 일몰제가 재건축으로 가면 비효율을 양산한다.

그나마 주민 의지로 사업을 진행하는 일반 재건축 단지들은 덜 억울할지 모른다. 하지만 정부가 44년 전 수립한 ‘아파트지구 개발기본계획’에 따라 정비구역 해제 대상에 오른 아파트지구 내 단지들은 당혹감 그 자체다. 소유자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정부 지정으로 정비구역이 됐는데 이를 유지하기 위한 절차는 주민들 몫이 됐기 때문이다. 대부분 재건축 단지들이 일몰 기한 연장에 성공했지만 일몰제 연장 시한은 2년이다. 2년 후면 또다시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일몰제의 근본적인 취지를 고려한 정책 보완이 필요하다. sep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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