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업체가 직접 제작해 판매하는 성인용품 ‘리얼돌’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대법원이 사람의 신체를 형상화한 성기구인 이른바 ‘리얼돌’ 수입을 허용하는 판결을 내린 이후 전국에는 리얼돌 체험방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이를 두고 사람 간 성매매가 아닌 만큼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주장과 불법 유사성매매로 간주해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이처럼 합법과 편법의 애매한 경계에 놓인 터라 당국도 단속이 쉽지 않다며 난감한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잠재적 아동 성 착취범죄를 막기 위해서라도 아동형상의 리얼돌 제작·판매는 강력히 규제하는 한편 리얼돌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히 이뤄져야 할 시점이라고 말한다.
지난해 설립된 한 리얼돌 체험방 체인업체는 올해 4월 현재 전국에 약 70개의 지점이 문을 연데 이어 20여개 지점이 추가로 개업을 준비하는 등 성업 중이다. 리얼돌 체험방은 대부분 원룸 형태의 오피스텔에 리얼돌을 비치해놓고 시간당 이용금액을 받는 식으로 운영된다. 리얼돌 체험방 주변 주민들은 사실상 변종 유사성매매가 이뤄지는 곳인 만큼 법적 규제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리얼돌 체험방을 단속하는 현장 경찰관들은 “사회 관념상 리얼돌 체험방에 문제가 없진 않지만 이를 규제할 마땅한 법적 근거가 없어 애매하다”는 입장이다. 현행 풍속영업규제법에 따르면 숙박업소나 노래연습장 등 풍속업소에서 음란행위를 하도록 알선할 시 업주가 처벌받는다. 문제는 대다수 리얼돌 체험방이 풍속업이 아닌 성인용품대여업으로 당국에 신고한다는 점이다. 경찰 관계자는 “체험방 안에서 벌어지는 행위 자체는 음란행위라고 볼 수 있지만 업주는 손님에게 방을 빌려주고 나갈 뿐”이라며 “업주가 ‘손님이 방 안에서 뭘 하는지 어떻게 아냐’고 항변하면 이를 단속할 법적근거는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때문에 현재 리얼돌 체험방 단속은 청소년보호법과 교육환경법에 근거해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상태다. 리얼돌 체험방은 성인용품을 대여해주는 청소년유해시설로 분류돼 청소년유해표시를 해야 하고, 학교 경계에서 직선거리로 200m 밖에 위치해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에 처해질 수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리얼돌 체험방 단속 결과 올해 들어 전국에서 총 13건의 위반사실이 적발됐다.
전문가들은 리얼돌 체험방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통해 새로운 처벌·규제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김한균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사회적으로 새 기준을 만들 필요는 있다”면서도 “다만 성적자유와 연결된 문제인 만큼 대여행위를 형사 처벌할 지는 좀 더 논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련 변호사도 “리얼돌 소지는 개인의 자유지만 리얼돌을 영리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면서 “리얼돌 대여사업을 어떻게 규제할지 법적 조치를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아동형상이나 교복을 입힌 리얼돌에 대해선 제작·판매·소지를 모두 금지하는 보다 강력한 제재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동을 성 상품화하는 그릇된 인식이 아동 성 착취범죄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호주, 영국 등에서는 아동형상 리얼돌을 제작·판매·소지하면 구금형에 처한다. 국내에서도 아동으로 인식될 수 있는 리얼돌을 제작·수입·판매·소지하는 행위를 처벌하도록 한 법안이 지난해 8월 발의됐지만 상임위에 계류된 채 20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될 처지에 놓여있다. /김태영기자 youngk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