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거돈 집무실로 불러 강제추행"…피해여성 폭로 예고에 불명예 퇴진

■'성추행' 오거돈 부산시장 사퇴
吳 "불필요한 신체 접촉 있었다"
피해여성 "인생 송두리째 흔들려"
6개월전에도 여직원 성추행 의혹
동남권 신공항 등 추진 사업 차질

오거돈 부산시장이 23일 오전 부산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시장직 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부산=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오거돈 부산시장이 23일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고 취임 1년9개월 만에 시장직에서 자진사퇴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미투(MeToo)’ 사건에 연루돼 광역단체장이 사퇴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오 시장은 이날 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한 여성 공무원을 5분간 면담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신체접촉을 했다”며 “시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저의 행동이 경중에 상관없이 어떤 말로도, 어떤 행동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임을 안다”며 “이런 잘못을 안고 위대한 부산시민이 맡겨주신 시장직을 더 수행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라고도 했다.

오 시장은 기자회견 말미에 “공직자로서 책임지는 모습으로 남은 삶을 사죄하고 참회하면서 평생 과오를 짊어지고 살겠다”며 “모든 잘못은 저에게 있다”고 울먹이며 4분 남짓한 기자회견을 마쳤다. 이와 관련된 질문도 받지 않았다.

이날 피해 여성 공무원 A씨가 부산성폭력상담소를 통해 밝힌 입장문에 따르면 A씨는 이달 초 업무시간에 처음으로 오 시장 수행비서의 호출을 받았고 업무상 호출이라는 말에 서둘러 집무실에 갔다가 성추행을 당했다고 한다. 당시 오 시장은 A씨와의 면담 과정에서 특정 신체 부위를 만졌고 이에 격분한 A씨는 변호사와 함께 부산성폭력상담소를 찾아 성추행 피해 사실을 알렸다.


이날 오 시장의 사퇴 기자회견은 A씨의 성추행 사실 폭로 예고에 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자신의 피해가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4월 말 이전에 사퇴할 것과 사퇴 이유에 강제추행 사실을 명확히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오 시장 측은 A씨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여 사퇴서를 작성해 전달했다. 또 사퇴서의 법적 효력을 담보하기 위해 법무법인의 공증도 받았다. 피해 공무원은 이날 “정치권의 어떠한 외압과 회유도 없었으며 정치적 계산과도 전혀 무관하다”며 “저는 여느 사람들과 같이 월급날과 휴가를 기다리면서 열심히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이번 사건으로 제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오 시장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여성 관련 문제로 구설에 올랐다. 지난해 10월 강용석 변호사와 김세의 전 MBC 기자 등이 출연하는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는 오 시장이 한 여성 공무원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오 시장 측은 이들의 계속된 주장을 ‘가짜뉴스’라고 규정하고 강 변호사 등 3명을 대상으로 5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2018년 11월에는 시청 근로자들과의 회식자리에서 자신의 양옆에 여성 근로자들을 앉게 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 또다시 성추행 사건이 불거지면서 시장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오거돈 부산시장이 23일 부산시청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사퇴 의사를 밝힌 뒤 자리를 떠나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경찰은 오 시장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다. 이날 부산경찰청은 여성청소년수사계가 오 시장이 사퇴하며 밝힌 성추행 사건의 사실관계를 확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오 시장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성추행 내용 외에 구체적인 범행 시점과 경위를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 시장의 사임 통지서는 이날 부산시의회에 제출됐다. 지방자치법에 따라 사임통지서는 접수된 날로부터 바로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변성완 행정부시장이 시장 권한대행으로 부산시정을 이끈다. 오 시장의 사퇴에 따라 정무 라인도 일괄 사퇴한다. 오 시장 사퇴에 따른 보궐선거는 내년 4월 첫 번째 수요일인 7일께 치러질 예정이다.

오 시장의 사퇴로 1호 공약인 동남권 관문공항 건설 추진 작업에도 차질이 생길 것을 보인다. 동남권 관문공항 사업은 부산·울산·경남과 대구·경북 등이 10여년에 걸쳐 유치경쟁을 벌이다 2016년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으나 오 시장이 김해 신공항 백지화를 주장하면서 논란이 재점화했다. 현재는 부울경 시도지사의 요구에 따라 국무총리실에서 검증 작업이 진행 중인데 오 시장이 물러나면서 앞으로의 추진동력에 힘이 빠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행정 전문가이자 해양 전문가다. 네 번째 도전 끝에 2018년 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에 당선됐다. 오 시장 당선으로 민선 1기 이후 23년 만에 처음으로, 그 이전 보수정권의 임명직 단체장 시절을 합하면 30여년 만에 부산지방 권력이 보수에서 진보로 교체됐다. 오 시장은 행정고시를 통해 1974년 부산시 행정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한 후 상수도사업본부장, 기획관리실장, 정무부시장, 행정부시장 등을 모두 거쳤다. 해양수산부 장관과 한국해양대 총장 등도 지낸 바 있다. 오뚝이 같은 삶을 살던 그는 취임 2년을 못 채우고 성추행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자리에서 내려왔다. /부산=조원진기자 bscit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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