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이사회는 당시 최고경영자였던 데븐 샤마 대표를 전격 교체했다. 샤마 대표는 당시 미국의 충격적인 신용등급 하락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 월가에서는 “버락 오바마 정부가 S&P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자 회사가 결국 백기를 든 것”이라는 해석이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다른 국가보다 기업 자유를 더 존중하는 미국에서조차 신용등급 강등은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예민한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하물며 기업에 대한 신용등급 강등은 보다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단기 유동성이 말라 기업들이 흑자도산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금융당국도 국내 신용평가 3사에 “기업 신용등급 조정에 신중을 기해달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발작과 같은 위기 때는 저승사자의 역할에만 집중하지 말라는 얘기다.
국내 신평사는 그래도 정부의 입김이 닿는다. 하지만 글로벌 신평사는 다르다. 잣대가 냉혹하다. S&P와 무디스의 1월 하순 이후 3개월간의 등급 조정 건수가 2007~2008년 때보다 월등히 많다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국내 기업에 대한 등급 조정은 △하향 7건 △전망조정 17건 △하향검토 2건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이미 하향건수가 8건이고 △등급전망 변경 14건 △하향검토 23건에 달한다. 현대차·SK이노베이션·LG화학·KCC·미래에셋대우 등 국내 대표기업들이 모두 하향 대상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 기업들의 신용등급이 대거 낮아질 위기에 몰리면서 해외시장에서 국내 기업들의 외화채권 스프레드는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포스코의 5년물 달러화채권과 미국 5년물 국채 간 금리 격차는 지난해 7월12일 1.07%포인트였지만 지난 22일 현재 2.16%포인트까지 벌어졌다. 포스코 채권을 그만큼 싼 가격에 시장에 던지겠다는 해외 투자자들이 늘었다는 의미다. 국내 기업들에 대한 연쇄 신용등급 강등이 이뤄지면 투매 현상이 일어 신규 자금조달이 아예 막히는 현상까지 빚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신평사들의 평가가 과도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부의 지원대책이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제 개발 등 경기 호전의 가능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국내의 한 기관투자가는 “신용평가는 기본적으로 현재 기업의 재무상황과 향후 전망을 고려해 이뤄지는 것”이라며 “글로벌 신평사들이 (단기에 어려워진) 기업들의 현금 상황에 과도하게 집중해 정부 대책 등을 고려한 전망을 보수적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가 국내 기업의 기업설명회(IR) 대변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반면 글로벌 신평사들의 행보를 ‘탄광 속 카나리아’로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 채권 애널리스트는 “국내 대표적 기업인 현대차 등급이 하향검토되고 있지만 포드 등 다른 글로벌 기업은 아예 신용등급이 하향됐다”며 “기업과 정부가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민석기자 seo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