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가 지난해 선보인 AI칩인 어센드910. /화웨이홈페이지 캡처
최근 미국의 정보기술(IT) 전문매체 Wccftech에 눈여겨볼 기사가 났다. 중국의 화웨이가 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GPU 시장은 엔비디아와 AMD의 양강 체제가 확고하다. 이 둘을 빼면 ‘칩질라(Chipzilla)’로 불리는 인텔이 외장형 GPU 출시를 통해 이들에 도전하는 정도다. 한마디로 최고 기업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어 후발주자의 시장 진입이 어렵다.
그런데도 화웨이가 이 시장을 노리는 이유는 뭘까. 기본적으로 GPU의 미래가 밝기 때문이다. 우선 GPU가 뜨는 이유를 설명하려면 중앙처리장치(CPU), GPU, 신경망처리장치(NPU) 등 각종 프로세서의 개념정리가 필요하다. 일단 CPU는 명령어를 순차적으로 처리한다. 미션이 1번부터 100번까지 있다면 1번을 끝내야 2번을 하고 2번이 끝나야 3번을 하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고차원 방정식을 해결하는 탁월한 ‘머리’를 갖고 있는 CPU라 하더라도 단순 계산을 빨리 마무리하는 데는 취약하다.
반면 GPU는 연산을 동시에 할 수 있다. GPU는 기본적으로 화면을 만들기 위한 프로세서다. 화면을 구성하는 점들의 신호 값이 동시에 나와야 그림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동시에 연산을 처리하는 능력이 필수다.
가령 배달해야 할 ‘택배 박스’가 1,000개 있다고 치자. 그런데 CPU는 이 1,000개의 택배 박스를 일일이 덤프트럭으로 나르는 것에, GPU는 1,000개의 오토바이가 한 번에 배달하는 것에 비유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덤프트럭은 힘이 좋고 여유 공간도 있지만 1,000개를 순서대로 나르는 동안 기름과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
하지만 GPU는 1,000개의 오토바이가 동시에 움직이기 때문에 자원 낭비 없이 한 번에 박스를 다 나를 수 있다. 고차원의 연산을 푸는 데는 천재 1명(CPU)이 낫지만, 더하고 곱하고 나누고 평균을 내는 식의 방정식 100개를 푸는 데는 천재 1명보다 범재 100명(GPU)이 훨씬 빠르고 정확한 것과 같은 이치다.
CPU보다 단순연산 훨씬 빠르고 정확
NPU 시대 前 GPU가 AI시대에 최적
자율주행·머신러닝 등 성장가치 무한
엔비디아·AMD 양분, 높은 벽에 도전
그런데 인공지능(AI)은 소수의 유능한 코어를 통해서가 아니라 다수의 단순 연산을 통해 작동하는 형태로 발전해왔다. 그래서 AI 시대에는 GPU가 뜰 수밖에 없다. 가령 ‘앞사람이 갑자기 튀어나오고’ ‘신호등이 바뀌고’ ‘뒤 차량이 앞 차량을 추월하고’ 하는 식의 여러 시나리오를 일거에 처리해야 하는 자율주행, 연산을 동시에 빨리 계산해야 채집이 잘 되는 암호화폐 채굴 등에는 GPU가 제격이다.
마지막으로 NPU는 GPU보다 병렬을 더 많이 두는 구조다. GPU보다 더 많은 수의 연산이 가능한 프로세서라는 뜻이다. 문제는 아직 제대로 된 NPU가 나오지 않았다는 데 있다. 지금 한창 연구개발 중이다. 나중에는 GPU보다 훨씬 복잡한 연산을 위한 프로세서인 NPU가 쓰이겠지만 제대로 된 NPU가 나오기까지 GPU가 AI에 활용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GPU의 전망이 밝은 것이다. 화웨이가 GPU 시장 진출을 모색하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자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화웨이를 GPU와 전혀 무관한 업체로 단정하기도 애매하다. 지난해 8월 AI칩 ‘어센드910’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사실 중국의 반도체 실력은 아직 많이 모자란다. 메모리만 해도 최근 낸드 업체 YMTC가 올해 말 128단 낸드 양산에 나선다는 뉴스가 뜨고 있지만 이전까지 출시 제품과 그간 행보를 보면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렵다. 말만 앞세우는 측면이 강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반도체 설계(팹리스)는 다르다. 반도체 여러 분야 중에서 설계는 후발주자가 선두주자를 단시간에 따라잡을 수 있는 유일한 카테고리다. 반도체 설계자산(IP)을 영국의 ARM이나 미국의 AMD 등으로부터 사용료만 내면 마음껏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화웨이의 AI칩 개발 능력은 국제 컨설팅업체인 컴퍼스인텔리전스로부터 전 세계 7위(지난해 기준)라는 평가를 받았다. 1위인 엔비디아보다 겨우 4.4포인트 낮다. 삼성전자는 13위다. CPU에서는 ARM의 코어텍스, GPU에서는 ARM의 말리 코어를 쓰고 있는 화웨이의 칩 설계 실력이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얘기다.
삼성 등 글로벌 그룹 인재 사냥 시동에
팹리스 기술력 갖춰 서구 경계감 커져
서구권 언론들은 화웨이를 경계하는 눈초리다. 화웨이가 벌써 인재 ‘사냥(poach)’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화웨이가 지난 2011년부터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사무실을 운영해오고 있는 점까지 시비할 정도다. 샌타클래라는 바로 엔비디아가 있는 곳이다. 화웨이가 흔히 스카우트를 원하는 인재들이 일하는 기업과 가까운 곳에 사무실을 두고 인재를 수집해오고 있음을 고려하면 우연의 일치로 보기 어렵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실제 어센드910도 화웨이가 엔비디아에서 빼낸 기술자가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퍼드질라 등 IT 매체들은 화웨이가 한국에 GPU 연구소 등의 벤처를 설립할 것이라는 루머가 업계에 나돌고 있는 점도 소개했다. 삼성·LG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인재 수혈에 들어갈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말 화웨이가 GPU 시장에 진입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천하의 애플도 자체 GPU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화웨이가 이미 AI칩을 만들 만큼 GPU에 대한 열정이 있고, 미국의 노골적인 압박 속에서도 자체 운영체제(OS)인 훙멍 개발에 성공한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이런 그간의 성과를 안다면 화웨이가 또다시 자체 GPU를 만드는 ‘사고’를 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거 같다. 기술 자립화에 속도를 내고 있는 화웨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sh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