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전경. /서울경제DB
폭행과 성희롱 사건에 대해 회사가 폭행에 해당하는 징계만 내렸다면, 이후 성희롱에 대해 추가로 징계하더라도 ‘이중 징계’가 아니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이상훈 부장판사)는 한 방송사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부당징계라는 판정을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방송사 소속으로 외주제작사를 관리하던 프로듀서 A씨는 지난 2008년2월 외주제작사 작가 B씨 등을 데리고 회식을 했다. 이후 방송사의 인터넷 게시판에는 B씨 명의로 “회식 당시 노래방에서 A씨가 블루스를 추자며 신체 접촉을 했고, 이를 회피하자 마이크로 머리를 내려쳤다”는 글이 올라왔다. 회사 측은 이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A씨를 징계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B씨가 성희롱 주장을 번복했다는 이유로 폭행 사실만 인정해 근신 15일에 처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18년2월 B씨는 인터넷 게시판에 “A씨가 당시 성희롱을 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B씨는 당시 성희롱 피해 사실을 번복한 적 없으며, A씨가 감봉 처분을 받은 줄 알았고,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은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방송사는 이에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재조사를 벌여 A씨에게 정직 6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그러나 A씨가 불복해 낸 구제신청에서 노동당국은 “이중징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징계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회사가 불복해 낸 소송에서 이 판단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10년 전 1차 징계 당시 회의록 등을 검토해본 결과 회사가 A씨의 근신 처분을 의결하면서 성희롱을 징계사유로 인정하거나 양정에 반영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당시 회식 중 성적인 발언을 한 직원에게 감봉 3개월의 징계를 내리는 등의 사례가 확인된다며, A씨의 성희롱까지 징계사유로 삼았다면 근신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원고(방송사)에는 취업규칙 등에 징계 시효 규정이 없고, 비위행위 후 상당 기간이 지났다는 사정만으로 제재의 필요성이 당연히 소멸한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재판부는 “업무상 우월적 지위에 있는 A씨가 처음 본 B씨를 상대로 격려하거나 잘해보자는 의미로 신체접촉을 하는 것이 사회 공동체의 건전한 상식과 관행에 비춰 허용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희조기자 lov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