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1.2조 수혈받아도 '살얼음판'

1년내 갚아야 할 회사채 1조 넘고
월 고정지출 최대 5,000억 달해
"지원금으로 석달도 못 버틸수도"


대한항공(003490)이 정부로부터 1조2,000억원의 지원을 받지만 여전히 위태위태하다. 급한 불만 꺼서는 해결되지 않을 정도로 대한항공의 유동성 위기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24일 KDB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대한항공을 운영자금 2,000억원, 자산유동화증권(ABS) 7,000억원 인수, 영구채 3,000억원(지분 10.8%) 인수 등으로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또 1조2,000억원의 신규 자금 지원과 별도로 산은과 수은은 오는 6월 말 만기 도래하는 2,100억원 규모 회사채의 차환을 지원하고 하반기에 만기가 돌아오는 2,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도 신속 인수하기로 했다. 산은은 “자금지원에 앞서 항공사 자체적인 자본확충과 자구 노력, 고액연봉·배당·자사주 취득 제한 등을 전제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대규모 자금지원 계획을 발표했지만 대한항공의 앞날은 암울하다. 국책은행이 7,000억원으로 ABS를 인수하며 급한 불을 끄고 6월 말 돌아오는 회사채를 차환한다 해도 대한항공이 1년 내 갚아야 할 차입금이 1조원을 넘기 때문이다. 여기다 운영자금 2,000억원은 대한항공 고정비용 4,000억~5,000억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물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하반기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며 운휴 중인 항공기가 뜬다면 급한 불을 끄고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상황이 장기화·악화한다면 대한항공은 버틸 재간이 없다. 코로나19 이후 대한항공은 수익원인 대부분의 국제노선이 운항을 멈췄다. 여기다 연내 돌아올 리스료 1조7,000억원과 차입금 3조원도 대한항공의 유동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 재계에서는 이번 지원에도 불구하고 대한항공이 3개월도 버티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제때 지원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대한항공이 추진하는 유상증자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주주들이 희생한다고 해도 실권이 발생했을 경우 증권사들의 인수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유동성 위기에 대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으면 유상증자 성공은 장담할 수 없다./박시진기자 see1205@sedaily.com

신용등급 하락땐 ‘ABS 조기상환’ 폭탄...1.7조 더 갚아야할 판

1년내 갚아야 할 회사채 1조 넘고

월 고정지출 최대 5,000억 달해

“지원금으로 석달도 못 버틸수도”



대한항공이 산업은행 등으로부터 1조2,000억원의 자금을 지원받지만 대규모 차입금 만기 등으로 신용등급 하락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대한항공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대부분의 국제노선이 중단돼 매출에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지난 1·4분기 대한항공은 국제선 여객 수가 지난해 동기 대비 41% 줄었고 화물 물동량 역시 3% 감소했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은 1·4분기에 2,074억원의 영업적자를 낸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항공은 국제선 여객 수요와 운임이 큰 폭으로 감소하며 매달 4,000억~5,000억원에 달하는 고정비용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한항공은 이달 2,400억원의 회사채 만기를 시작으로 상반기까지 8,000억원 규모의 차입금 상환이 예정돼 있다. 올해 말까지 갚아야 하는 차입금은 4조300억원이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은 자금 상환 등을 위해 5,000억~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유상증자를 통한 자본확충으로 1,000%에 달하는 부채비율을 떨어뜨려 재무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의도도 있다. 하지만 현재 유상증자 작업이 순탄치 않다. 주관사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됐던 일부 증권사들은 높은 수수료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불확실성 등을 이유로 인수단 참여를 거절했다.

정부의 지원 규모가 예상보다 작다는 점도 대한항공에 악재다. 대한항공은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 해소를 위해 최소 2조원 이상의 지원을 기대했다. 하지만 지원은 1조2,000억원 수준에 그쳐 급한 불을 끄는 수준이다.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한 유상증자도 정부의 지원을 전제로 불확실성을 일부나마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정부의 신용 보강 등 항공 산업 지원대책으로 대한항공의 재무적 리스크를 다소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예상보다 적은 지원으로 증권사들이 인수단 참여에 머뭇거릴 수도 있다. 실권을 떠안았을 경우 증권사들에도 부담이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과거 2015년과 2017년에도 각각 5,000억원, 4,500억원을 유상증자로 조달하며 차입금을 상환해왔다. 당시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으로 청약을 받은 결과 청약률이 각각 167%, 96%에 달했다. 그러나 이번 유상증자는 상황이 다르다. 코로나19 사태로 대한항공의 영업이 사실상 중단됐을 뿐 아니라 재무적 리스크가 큰 상태다. 대한항공은 자금조달이 시급한 상황이라 막상 유상증자 할인율을 높이기도 쉽지 않다. 정부는 오는 5월 중순 전까지 대한항공에 1조2,000억원을 지원할 계획이지만 이 금액으로는 3개월도 채 버틸 수 없다는 점도 유상증자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한진칼(180640)을 비롯한 다른 주주들도 현금 여력이 충분하지 않아 유상증자에 돈을 투입할지 미지수다. 현 상황에서 대한항공이 유상증자를 추진할 경우 과거 아시아나항공의 사례처럼 대규모 실권을 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정상적인 영업활동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기대했던 정부의 지원금마저 규모가 대폭 축소돼 대한항공의 자금경색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정부는 대한항공에 자체적인 자본확충을 요구하지만 신용도가 하이일드(high-yield)급으로 떨어져 회사채나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 등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대한항공은 2017년부터 지난해 초까지 발행한 공모채 대부분이 수요예측에서 오버부킹을 기록하는 등 선전했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이후 발행한 회사채는 미달 사태가 발생하는 등 자금조달이 어렵다.

대한항공 유동성 위기의 핵심은 신용도 추가 하락이다. 대한항공은 2015년 한진(002320)해운에 대한 자금지원과 출자로 신용등급이 ‘A-(부정적)’로 강등됐다. 이어 2017년에는 ‘BBB(안정적)’ 등급으로 신용도가 하락했다. 현재 대한항공의 신용등급은 ‘BBB+(하향 검토)’로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지난달 대한항공을 신용등급 하향 와치 리스트에 반영했다. ABS 신용등급은 ‘A’에서 ‘A-’로 한 단계 하향했다. 신용평가사들은 실적 악화가 지속될 경우 등급을 강등할 계획이다. 이 경우 대한항공은 ABS 조기 상환 트리거가 작동된다. 대한항공이 미래 항공매출을 담보로 발행한 ABS는 지난해 말 기준 1조7,137억원이다. ABS는 여객 실적이 일정 기준을 밑돌 경우 조기 상환을 청구할 수 있으며 대한항공의 신용등급이 하락할 경우에도 조기 상환 트리거가 발동돼 이를 상환하지 못하면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놓인다.

대한항공은 자구책의 일환으로 서울 송현동 부지를 비롯한 왕산레저개발 등 유휴자산 매각을 본격화했다. 전 직원 6개월 순환휴직을 실시하고 임원진은 월급여의 30~50%를 반납하는 등 비용절감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매각이 성사된다고 해도 수개월이 소요되는 터라 대한항공의 자금난은 더욱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대한항공은 1조원이 넘는 적자가 예상되며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이 커졌다”며 “정석기업이 보유한 부동산 유동화, 계열사 지분 매각 등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자금을 마련할 방안이 없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관계자는 “차입금 상환이 계획돼 있지만 자금 마련에는 문제가 없다”며 “상반기가 지나면 코로나19가 잠잠해져 항공 수요가 회복돼 매출이 다시 반등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박시진기자 see120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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